우리가 하는 일이 바쁠 땐 한없이 바쁘지만, 중간중간에 조금 덜 바쁜 시기도 있다있었다. 이 기간에 그다음 바쁜 시기를 위해 충전도 하고, 밀려드는 일을 정신없이 쳐내느라 그동안 못 했던 deep work를 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이 deep work란 외부의 방해 없이 특정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읽는, 어쨌든 다른 미팅, 이메일, 카톡, 전화 등의 방해를 최대한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deep work를 하는 시간이 점점 없어져서 – 실은 내가 일을 더 만들면서 스스로 없앴다고 하는 게 맞다 – 언젠가부터 내가 진짜 일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일을 그냥 쳐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살짝 멈추고 내가 온 길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없어질수록 점점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야말로 누구보다도 기술, 사업 모델, 그리고 산업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미팅만 계속하고 쌓이는 이메일에만 대응하다 보니 지식이나 사업,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아니라 아주 얕은 지식만 습득하게 됐다. 더 우려되는 건, 이런 얄팍한 지식만으로도 어디 가서 아는 척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이게 몸에 배면 마치 내가 통찰력이 있고 유식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 이게 가능하냐면, 우리는 워낙 많은 창업가와 만나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대부분 경험으로 배운 실전지식이라서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도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깊이는 없지만 아주 넓은 지식의 이야기보따리가 내재화되는데, 완전 전문가가 아닌 분들에겐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다 – 이 깊이가 없는 지식만으로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VC라는 업의 좋으면서도 안 좋은 특성인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나도 어느 순간, 마치 내가 모든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안다는 착각을 하면서 겉으로만 맴돌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는데, 내가 이걸 느낄 수 있다면 남들은 이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다시 deep work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따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냥 내가 산업, 기술, 회사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공부도 하고, 기사도 읽고, 필요하면 전문가와 만나는 6시간의 ‘thinking time’을 내 캘린더에 박아놓았다. 정말 급한 게 아니라면 그냥 사무실에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읽는 것에 집중하고, 이메일 쓰는 건 되도록 자제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게 잘 지켜지고 있진 않다. 우리가 하는 업무의 특성이 매일 반복되거나 정해진 게 없어서 회사 미팅이 잡힐 때도 있고, 외국에서 손님이 갑자기 올 때도 있고, 내가 월 ~ 목 기간 동안 쳐내지 못한 이메일이 있으면 금요일 오후에도 생각하고 읽기보단, 뭔가 쓰는데 급급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 deep work Friday 오후 일정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매일, 매주 노력한다. AI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마치 전문가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답변을 받을 수 있고, 이걸 대충 읽으면 본인도 전문가가 된 것 같고 남들도 내가 전문가인 줄 착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럴수록 더 많은 공부와 생각이 필요한 시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분들은 deep thinking과 deep work를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나 루틴이 있는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