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에 대해

요새 넷플릭스가 고전하고 있다. 아직 OTT 업계에서는 최강자이고 나만 봐도 계속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데, 이 회사와 업을 잘 아는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면 신규 고객 획득 속도가 둔화하고 있고 히트 콘텐츠 제작 능력도 신통치 않아서 회사의 장래가 어둡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시장의 심리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회사의 시가총액이 2025년 고점 대비 반토막 이상 났다.

나도 관심이 많은 회사인데, 얼마전에 넷플릭스 관련 기사를 보다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올가을에 넷플릭스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원래는 전체 직원의 10%를 감축하는 걸 목표로 했다가 결국 6%로 협의했다. 어느 수요일 오전에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내부 메모를 통해 – 아마도 이메일이었을 것이다 – 이 계획을 발표했고, 이날 오후 2시경 해고 대상자들은 회사 이메일 접근 권한을 잃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넷플릭스에서 콘텐츠 총괄 벨라 바하리아도 사전 통보 없이 해고됐다.

해고된 직원분들에겐 안타깝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미국 회사들의 빠르고 자유로운 해고 문화가 굉장히 부러웠다. 회사가 어렵고 성장을 못 하면 결국 그 책임은 회사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있고, 회사의 성장에 기여를 못 하는 사람들은 나가야 하는 게 맞다. 회사에 기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준은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회사는 실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회사는 실력보단 조직문화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그 직원이 필요없다고 결정하는 그 순간 해고를 통보할 수 있고, 통보받은 직원은 나가야 한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이후에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내가 아는 미국 근로자들은 웬만하면 노동청에 신고하지 않고, 그렇게 하더라도 회사가 지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물론, 누가 봐도 부당한 이유라면 회사가 지지만, 회사가 누군가를 해고할 때는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넷플릭스같이 사람을 해고하는 게 참 어려운 나라다. 오전에 이메일로 해고됐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당일 오후에 회사의 출입카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노동청에 신고는 물론, 어쩌면 뉴스에도 나올만한 이슈가 될 건데, 이유를 막론하고 아마도 노동청에 신고가 접수되면 그 회사가 벌금을 내거나 심한 경우 대표이사가 구속될 수도 있다.

나도 2001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 보안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안가서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해고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일을 그렇게 못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회사는 비용절감을 해야 했고, 경영진은 내가 회사에 큰 기여를 못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넷플릭스 임직원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고 일어나니까 새벽에 회사에서 오늘부로 해고됐다는 통보 이메일을 받았고, 기분은 더러웠지만, 내 물건을 찾으러 회사에 갔다. 그게 아마도 오전 8시 40분 정도였던 것 같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 출입증을 단말기에 갖다 대니 초록불 대신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출입이 거부됐다. 가끔 접촉불량으로 인해 빨간불이 들어온 적이 있어서 몇 번 더 해봤는데 안 되자 “아, 나 짤렸지…”라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그리고 몇 분 후에 우리 회사 HR 매니저가 내려와서 “Sorry Kihong, we are letting you go”라고 하면서 내 물건으로 가득찬 종이 박스를 건내줬다. 그 박스를 받기 위해서 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저지당했다. 대신, HR 매니저가 밖으로 나왔다. 역시 기분은 더러웠지만, 이렇게 나는 첫 직장에서 짤렸다.

나는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나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열심히 한게 회사에 상대적으로 기여를 못 했다고 회사는 판단했고,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나는 해고된 거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원래 회사라는게 이런거다. 내가 일하는 대가로 회사는 나에게 돈을 주는데, 그 돈은 땅을 파면 기름처럼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나 같은 직원이 회사에 기여하면 매출이 발생하고, 그 매출로 직원들 월급을 주는 건데, 내가 그만큼 회사에 기여를 못 한다고 판단되거나, 회사의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냥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이 사실을 석 달 전에 통보할 수도 있고, 당일 통보할 수도 있다. 이건 회사의 정책이고 솔직히 맘대로 할 수 있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이게 안 된다. 한 번 채용하면 해고하는 게 너무 힘들고, 해고해도 회사에 데미지가 발생한다. 현실이 이러니 사람을 채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인터뷰 과정이 매우 길고, 수습기간이 생각보다 빡세다. 직원들에겐 이게 불만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이 이렇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누가 봐도 일 안하고, 회사에 기여도가 낮고, 심지어 암과 같은 존재인데, 이런 직원을 회사에 계속 남기면 그 회사는 결국 망한다. 그런데 이런 분을 해고하면 온갖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니, 회사의 경영진으로서는 이 사람을 해고하지 말고, 계속 잘 설득하고 달래면서 같이 가는 결정을 하는데, 이 선택 때문에 회사가 거의 망할 뻔 한 걸 몇 번 봤다.

이런 한국의 현실과 넷플릭스 같은 회사의 당일 통보 및 해고 문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물론, 악덕 고용주가 일 잘하는 직원을 부당하게 해고하는 사례가 있어서 한국 특유의 방식대로 노동법이 하나씩 생긴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차를 아예 법적으로 금지하거나, 차의 운행을 시간으로 제한하는 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쩌면 너무 고용주와 사장님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나는 한국의 이런 즉각적인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은 모두의 발전을 심하게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제대로 하기

나는 음식이 맛있고, 직원분들이 친절하고 훈련을 잘 받은 식당을 발견하면, 웬만한 식사 약속은 이 식당에서 계속 잡는다. 지금은 사무실을 이사해서 더 이상 안가지만, 작년에 사무실 근처의 중국집을 일주일에 4번 간 적도 있다. 나는 저녁 약속이 거의 없지만 점심 약속은 거의 매일 있다. 1년 내내 점심 식사 약속이 있는데 그 많은 식사 약속을 4개의 식당에서만 잡는 걸 보면 같은 식당을 얼마나 자주 가는지 계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웃긴 건, 같은 식당에서 같은 음식만 먹는다. 자주 가는 해산물 식당이 있는데, 올해, 이 식당에서 전복순두부를 수십 번 먹었을 것이다.

이게 좋다는 것도 아니고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성향이 식당을 선택하고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에도 반영되는 건데, 나는 여러 가지를 하는 것보단, 딱 한 가지만 하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그 한 가지를 오랫동안 제대로 잘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한 식당만 가고, 그 식당에서도 한 메뉴만 먹는 게 뭔가를 잘하거나 제대로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성향이 먹는 것에도 반영된다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는 이와 반대로 매번 다른 식당을 방문해서 다른 메뉴를 골라서 먹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이라서 나는 밥을 따로 먹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하나만 제대로 하는 건 내가 하는 모든 것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회사에서도 나는 이제 웬만하면 내가 잘 못 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 새로운 걸 배우는 데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 트렌드에 대해서 눈과 귀를 닫고 산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고 살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커리어에 있어서 내 나이와 단계에서 내가 못 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서 시간, 돈,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내가 현재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훨씬 더 잘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시간, 돈, 에너지를 쓰는 게 나와 우리 회사를 위해서 더 현명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대충 하지 말고 하나만 정말 오지게 제대로 하자는 내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왕 할 거면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게 내 철학이다. 그래서 일단 한 개의 운동을 몇 년 동안 꾸준히 하고, 다른 걸 하고 싶으면 새로운 운동에만 집중한다. 여러 개의 운동을 동시에 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내 주변에도 뭔가 새로운 운동에 매주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렇게 하면서 이 분들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즐거우면 된거다. 나는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고, 올림픽에 나갈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나 할 거면 남들보다 더 잘하자는 생각은 한다. 이런 생각을 갖다 보니 한 번에 하나만 꾸준히, 그리고 제대로 하는 편이다. 이런 철학이 있어서인지 나는 취미부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아는 취미부자는 많은 걸 하지만, 이 중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이어트만 평생 연구해 온 의사에게 어떤 다이어트가 가장 좋은지 물어보면 “The best diet is the one that you can stick to.(가장 좋은 다이어트는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다이어트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너무 거창한 것도 필요 없고, 다양한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오랫동안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게 최고다. 일주일만 실천하고 다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단어로 된 다이어트보다 하루에 방울토마토 5개씩 먹는 걸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이게 나에게 맞는 최고의 다이어트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운동을 여러 가지 하지 말라는 것도, 여러 개의 식당에 가지 말라는 것도, 일을 너무 많이 벌이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뭔가를 할 때 내가 꾸준히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걸 잘 선택하고, 실제로 이걸 꾸준히 하면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일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자신감도 생겨서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이 이기는 방법

이전 포스팅에서 한국이 AI 전쟁에서 일등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항상 후발주자였고,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출발해서 일등 한 경험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 방식에 있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이 몇가지만 개선하면 AI 시장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만의 플레이북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AI, 로봇 등의 딥테크에 엄청난 투자를 집행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건 한국에겐 너무나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막대한 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대국이 됐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는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AI 인프라, 애플리케이션, 인재양성에 투자하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도 똑같이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하는 똑같은 플레이북인데 이렇게 똑같이 해서는 미국, 중국 또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이길수가 없다. 이런 나라들은 우리보다 돈도 많고 인재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발주자로서 이기고 싶으면 우리만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우리만 제일 잘 할 수 있는 소수의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한국에겐 맞는 전략이다. 바로 우리가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이제 일등하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봐야 한다. 메모리, 조선, 자동차, 건설, 국방 등이 이런 분야이다. 우리가 제일 잘하고, 그동안 많은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 AI와 로봇 기술을 접목해서 이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더 잘하는 전략이 한국이 이길 수 있는 플레이북이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과감하게 버리고 오히려 다른 나라가 만든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AI에 들어가는 막대한 투자 소식을 접할 때마다 드는 아쉬움도 있다. 이 투자금의 일부를 AI가 아닌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음식, 화장품 등 이미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에 우리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다른 나라가 아예 따라올 생각조차 못 하는 압도적인 일등이 되는 게 AI에서 이기는 것만큼 중요한데, 지금 한국은 마지막 1원까지 모두 다 딥테크에 투자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만의 플레이북이 필요하다. 내가 정부에서 이런 자금을 집행하는 담당자라면 콘텐츠와 소비재 분야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스트롱) AI, 딥테크, 국방, 우주, 로봇 분야에도 투자하지만, 입고, 바르고, 먹는 소비재 분야에도 매우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AI 전쟁에서 우리가 정말로 이기고 싶다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매우 똑똑하고 매우 열심히 일한다. 이게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강점이었지만, 이렇게 날카로웠던 우리의 엣지가 점점 더 뭉툭해지고 있다.

2010년도에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63시간이었다. 이는 약 1,700시간인 OECD 평균을 훨씬 더 웃도는 수치였는데, 이 근로시간은 2025년도에는 1,833시간으로 떨어졌고 계속 내려가고 있다. 지금은 OECD 평균보다 높지만, 조만간 평균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 우리의 근로시간은 2018년도에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한국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가진 유일한 자산은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을 잘 활용해야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9-9-6으로 일하는 중국을 이기고 싶어하고, 이겨야 한다고 외치면서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는 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플레이북.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는 문화. 이 두가지만 잘 정착시키면 우린 후발주자라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이길 수 있다.

후발주자의 저력

전 세계가 그렇지만, 한국도 AI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계획대로 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라서 미국이나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도 전 세계에서 AI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그리고 이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확보할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국가적으로 이렇게 큰 투자를 하는 방향 자체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투자가 제대로 집행되는 건 또 다른 문제라서 앞으로 이 일을 하는 적절한 분들이 국민의 세금을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란다.

모든 현상에는 음과 양이 있고, 역시 정부의 이 계획에도 찬반의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나같이 어느 정도의 회의감이 – 이건 방향이 아니라 실제 집행을 잘할지에 대한 의문이다 – 있지만 방향은 맞다고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그룹이 있고, 한국은 이미 늦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커녕 인도와 같은 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반대하는 그룹도 있다.

결사반대하는 사람의 의견도 공감하고 이해한다. AI는 first mover가 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라서 이미 우리는 늦었다는 회의감, 왜 한국은 먼저 시작하지 못하고 항상 후발주자인지에 대한 불만, 그리고 솔직히 테크와 AI와는 큰 상관 없는, 그냥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등의 이슈가 혼합된 의견인 것 같다.

우리는 AI의 후발주자이다. 이건 맞다. 어쩌면 남들은 이미 100m 경주에서 50m 선에 도달했는데, 이제 한국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미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산업에서 항상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후발주자로 시작해서 결국엔 이긴 경험이 우리에겐 너무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이 자동차를 처음 만들지 않았다. 미국, 독일, 그리고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시작했고, 시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포드로부터 외주 생산을 맡으면서 우리는 매우 늦게 시작했지만, 이젠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드는 나라가 됐다.
배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섰지만, 결국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배를 만드는 나라가 됐다.
음악 하면 케이팝이 떠오르지만, 한국은 클래식 음악도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음악에 있어서는 한국은 정말 후발주자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나라에서 무슨 엔터테인먼트를 하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제 한국은 전 세계의 대중음악가와 고전음악가가 필수적으로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는 나라가 됐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미국, 일본, 핀란드 등이 한국보다 훨씬 더 먼저 시작했고, 시장을 장악했지만, 이 시장을 우리는 야금야금 먹으면서 이제 전 세계 1등이 됐다.
케이뷰티 또한 마찬가지다. 못 사는 나라에서 무슨 외모에 신경을 쓰냐는 회의감도 컸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화장품을 가장 잘 만들고, 외모 관련 산업에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압도적인 1등 국가가 됐다. 뷰티 분야는 프랑스와 일본이 20년 전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고 있었다.

이 외에도 한국이 후발주자였지만 이제 1등인 분야가 너무 많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배웠고, 더 빠르게 따라잡았고, 결국 많은 분야에서 선두반열에 들어왔다. 나는 이게 한국이 가진 후발주자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후발주자의 저력이 AI에서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아니, 먹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정말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론,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있다. 남들이 모두 사용하는 플레이북이 아닌 우리만의 성공방식이 필요하고, 한국은 열심히 일하지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다.

코파운더가 정말 필요한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의 주인공은 창업가들이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피칭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 하나의 번외 일정이 있는데,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AMA 세션이다. 몇 년 전에 실험적으로 이 AMA 세션을 시작했는데, 청중의 반응이 꽤 좋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에게도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서 이젠 거의 공식적인 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진행했고 다른 파트너분들과 함께 나도 무대에서 다양한 질문을 듣고 답변했다.

어떤 분이 1인 창업에 대해 질문했고, 프라이머 파트너분들이 각자 본인의 의견과 답변을 공유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어떤 분이 인스타에 올렸다. 이걸 보고 몇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왔는데, 어떤 분은 동의하고 어떤 분은 반대하지만, 대부분 솔직한 생각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1인 창업, 즉 sole founder 팀을 싫어한다. 그런데 위의 인스타 릴스를 보면 내가 왜 1인 창업팀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기서 충분히 설명해 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개발능력이 없는 똑똑한 분들이 일인 창업하면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회사에 없고, 외주를 통해서 개발하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품질에 문제가 생겨서 개발이 가능한 코파운더가 필수였는데 이젠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꽤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는 AI만 잘 활용하면 ‘능력없는 창업가’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능력 좋은 분이 혼자서 창업하는 게 왜 나는 별로일까?

나는 일인 창업가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이라서 무조건 코파운더 또는 코파운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장 동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은 창업가에겐 매우 심각한 문제다. 모든 창업가가 나에게 하는 말은 창업이 너무 외롭다고 한다. 이 외로움이 쌓이다 보면, 여기에도 복리가 작용하고, 복리로 쌓이는 외로움은 결국엔 사람을 망친다. 외로움,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과 – 사업이 주로 잘 안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싸우다 보면 아무리 몸과 마음이 튼튼한 분이라도 몸과 마음이 매일 산산조각 난다. 나는 이런 걸 매일 본다.

사람마다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다르다. 격렬한 운동, 술, 음식, 명상, 독서 등이 내 주변의 창업가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일부이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과 싸우는 건, 마치 자기만의 전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창업가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어떤 창업가는 동네 싸움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크기를 떠나서 이를 직접 겪고 있는 분에게는 본인의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하지만 힘들고 외롭다.

이 조용한 싸움을 할 때, 옆에서 나와 함께 이 외로움을 분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코파운더다. 대부분의 코파운더는 사업이나 돈으로 서로 엮이기 전인 순순했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단순히 사업을 함께 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제품을 같이 만들고, 펀딩을 같이 하고, 채용을 같이 하고, 영업을 같이 하고, 고객을 같이 만나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더러운 똥 밭에서 구르면서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게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거려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스타트업은 빨리 가면 지친다. 멀리 가야하고 멀리 가려면 동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sole founder에게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것이다. 똑똑한 분이 혼자 창업해서 AI 에이전트 100개를 만들어서 모든 걸 돌리면 결정도 더 빨리하고, 돈도 더 잘 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서 사업을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AI가 모든 걸 만들고, 창작하고, 심지어 의사결정까지 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변한다. 시장도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 하지만 모든 좋은 회사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