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 타기

나는 일 년에 3~4번 정도 미국의 다양한 도시로 출장을 가는 데, 오래 가면 4주 동안 미국 전역을 이동한다. 한 달 동안 한 도시에서 하루 내지 이틀 숙박하고, 계속 비행하면서 한 호텔 체크아웃에서 다른 호텔 체크인으로 전전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약간 피폐해진다.

그래서 장기 출장을 가면 체력 안배와 컨디션 조절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매일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시차가 있지만 최대한 잠을 잘 자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되도록 하루 미팅 개수를 너무 많이 만들지 않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피곤한데 술까지 먹으면 더 피곤해지고, 이 피로가 오랫동안 쌓이면 힘들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저녁 약속을 잘 안 잡지만, 출장 중에는 더욱더 되도록 술을 안 먹고 저녁 약속보단 아침 또는 점심 약속을 잡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녁에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호텔방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책을 많이 읽는다. 매일 최소 30분 이상 독서를 하고 – 그래서 오히려 출장 가면 책을 더 많이 읽는다 – TV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를 본다. 요새 내가 미국에서 보는 프로가 두 개 있다. 17년째 장수하고 있는 Shark Tank는 그냥 TV를 켜놓고, 재방송까지 전부 다 볼 정도로 즐기는 쇼이고, 또 즐겨 보는 프로가 History Channel에서 7년 동안 방영하고 있는 The Food That Built America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음식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이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성장해서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이 됐는지를 드라마와 같이 구현하는데,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맥도날드, 코카콜라,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등과 같은 제품이 등장한다. 이번 출장에서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냉동 스낵 Hot Pocket에 대한 에피소드를 매우 흥미롭게 봤다.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지만, 내가 인상 깊게 봤던 건, 1950년대 중반에 전자레인지가 발명됐지만, 이걸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판매가 부진했고, 1980년대에 핫포켓이라는 냉동 스낵이 등장하면서 이 스낵이 전자레인지의 판매를 견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보니, 미국 시장의 전자레인지 침투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수치를 찾을 수 있었다:

-1971년: 미국 가정의 1% 미만
-1983년: 핫포켓 출시
-1986년: 25%
-1990년: 72%
-1997년: 90% 이상(즉, 미국 모든 가정에서 전자레인지 사용)

이 수치를 보면, 핫포켓 때문에 전자레인지가 발명된 건 아니지만, 전자레인지로 뭘 할지 모르고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전자레인지를 필수품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냉동식품이 바로 핫포켓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핫포켓이 나오면서, 누구나 다 이 냉동 스낵을 먹기 위해서 전자레인지를 서둘러 구매했다고 이야기하는 걸 이 프로에서 직접 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미국의 가정이 전자레인지를 구매할수록, 핫포켓의 매출 또한 급성장했다.

핫포켓과 전자레인지의 관계가 나에게 흥미로웠던 건, 내가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가 출시되자마자 잘 팔렸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시기에 냉장고가 발명됐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를 차갑게 먹기 위해서 더 많은 미국인이 냉장고를 샀고, 냉장고 때문에 코카콜라를 차갑게 판매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코카콜라가 판매됐다.

코카콜라나 핫포켓과 같은 제품이 단순히 잘 팔리는 제품에 멈추지 않고,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고,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시기에 냉장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코카콜라가 되진 않았을 것이고, 전자레인지가 없었다면 핫포켓이 미국 냉동 간식의 대명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종사하는 테크 생태계에도 이런 큰 흐름을 타고 거대한 기업들이 만들어졌다. 테크 분야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회가 약 10년마다 한 번씩 오는데, 수십조 원 기업가치의 회사들은 이런 10년마다 오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탔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60년대에 반도체가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인텔이 이 시점에 창업됐다. 이후, 반도체는 더 발전했는데, 솔직히 이 고성능 반도체에 최적화된 시장을 아직 찾지 못하던 시기에 PC의 시대가 왔다. 이때가 1970년대였고, PC와 반도체 회사 모두 물 만난 고기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오라클과 같은 회사가 70년대에 탄생했고, 이들이 만드는 컴퓨터는 반도체의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기계였다. 그리고 이 기계의 성능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반도체 산업도 같이 성장했다.

그 결과로,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이 탄생하기 전에는 모든 컴퓨터가 따로 놀았다. 1980년대에 미국방연구소(DARPA)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땐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이 시점에 시스코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인터넷 네트워크를 위한 척추가 되는 스위처와 라우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스위처와 라우터 시장도 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치 핫포켓과 전자레인지가 함께 성장한 것처럼. 그리고 90년대부터 메인스트림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초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이 시기에 창업됐다.

이후 소셜, 모바일, 그리고 이젠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데, 이 시기에 거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들은 어떤 흐름을 탈지 잘 고민해 봐야 한다. 내가 이 파도 위에서 사업하면서 파도를 더 거대하게 만들고, 다시 이 파도를 타고 더 높게 오를 수 있는, 이런 플레이북을 만들어야지만 시대의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다.

핫포켓과 전자레인지. 코카콜라와 냉장고. 이런 시대의 흐름을 다시 이 AI의 시대에서 재현할 수 있는 창업가들이라면 꼭 스트롱에 연락해 주시길.

최후의 1인(=버티기)

우리는 분기마다 투자팀 전원이 모여서 현재 살아 있는 포트폴리오를 검토한다. 각 멤버는 담당하는 회사의 기업 가치가 현실적인지를 판단하고 만약 현재 상황 대비 기업 가치가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회사 가치를 감액한다. 예를 들면, 가장 최근 투자를 기업 가치 100억 원에 받았다면, 서류상 이 회사의 적정 기업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하는데, 만약에 이 가치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50억 원과 같은 더 낮은 가치로 감액한다.

만약에 투자사가 사업은 영위하지만, 담당하는 분이 이 회사는 그냥 이렇게 가다가 망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아예 손실 처리한다. 위의 예시를 그대로 사용해 보면, 서류상 회사의 적정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치를 0원으로 수정하고, 이 회사는 손실 처리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적극적으로 감액하고 손실 처리하는 VC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이 생태계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건강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그 회사의 실제 비즈니스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걸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우리의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좋다는 게 스트롱의 생각이자 원칙이다.

이런 적극적인 감액과 손실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어떤 분기엔 10개의 회사를 감액하고 손실 처리했다. 손실 처리한 회사 중 정식으로 폐업한 곳도 있지만, 아직 버젓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전에 내가 이런 우리의 프로세스를 다른 VC와 공유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완전히 기겁하면서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고, 더 낮은 밸류에 투자받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 자기 살을 깎을 필요가 있냐면서 깜짝 놀랐다. 이 분이 정확히 사용했던 표현은 “자해”였는데, 본인이 이렇게 스스로 회사의 가치를 감액하거나 손실 처리하면 – 즉, 자해하면 – 이걸 본인도 못 견디고, 몸담은 VC의 임직원 분들도 못 견딜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의 회사는 투자 손실이 발생하는 건 정말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손실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돈을 잃는 걸 견딜 수 없다면 투자를 하면 안 된다. 내가 운에 대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투자는 운의 영역이 크고 실력이 약간의 조미료 역할을 하므로, 아무리 투자를 잘해도 돈을 잃을 수 있고, 언젠가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얼굴에 펀치 맞는 게 너무 싫고, 내 얼굴이 못생겨지는 걸 견딜 수 없는데도 복싱을 직업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천재 복서라도 언제나 얼굴에 펀치 맞을 수 있고, 많이 맞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얼굴에 펀치 맞는 걸 못 견디면 복싱하면 안 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너무 싫고, 항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야 하고, 이 계획과 예측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어긋나는 걸 견딜 수 없다면, 스타트업하면 안 된다. 그 무엇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로 하루가 가득 채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투자든, 사업이든, 복싱이든, 그냥 계속 버티면서 ‘경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손실이 엄청나게 발생하고, 이에 따라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매일 경험해도 버티면서 계속 투자해야 한다. 얼굴에 펀치를 너무 많이 맞아 피범벅이 돼서 너무 아프고 괴롭더라도 버티면서 계속 펀치를 날려야 한다. 너무 많은 서프라이즈로 과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이미 공황 상태가 됐더라도 일단 버티면서 계속 일을 쳐내야 한다.

결국 남들이 다 쓰러지고 나가떨어져도 계속 투자, 경기, 사업을 하는 최후의 1인이 돼야 한다. 영어에서는 이 상태를 표현하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멋진 말이 있다.

“The name of the game is to stay in the game”

계속 투자하면서 결국엔 발생한 손실 이상을 버는 게 잘하는 투자이고, 계속 펀치 날리면서 결국엔 맞은 펀치보다 더 많이 상대방을 때리는 게 잘하는 복싱이다.

(강제) 모바일 디톡스

지난주 미국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탔는데, 다음 미팅으로 가는 도중 급하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야 해서 차 안에서 핫스폿을 키고 일을 좀 했다. 정신없이 이메일 쓰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급하게 짐을 챙기고 내렸는데 아뿔싸,,,옆에 잠깐 빼놨던 전화기를 차 안에 놓고 내린 것이다. 사람이 운전하는 우버라면 그냥 다시 문 좀 열어달라고 할 텐데, 웨이모는 한 번 잠기면 그다음 승객이 탈 때까진 문이 안 열린다. 내가 놓고 내린 전화기가 창문으로 보이는데 문은 안 열리고, 야속한 웨이모는 뒷좌석에 내 전화를 실은 채 그다음 승객에게 달려갔다.(나중에 와이프랑 통화하니, 그냥 발로 차든지 해서 차에 흠집을 내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추고 경찰이 왔을 테고, 그러면 전화를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다음엔 그렇게 해야겠다).

웨이모가 간 후,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과는 다른, 뭔가 다른 차원의 공황 상태를 경험하면서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졌다. 정신 차리고 웨이모에도 연락하고 아이폰도 리모트로 잠가서 전화기 안의 정보 도난 관련 걱정은 사라졌는데 – 아이폰의 보안 기능은 정말 대단하게 잘 만든 것 같다. 실은 너무 과하게 잘 만들어서 나같이 분실한 경우가 아니라 실수로 애플 계정이 날아가거나 하면 좀 짜증 날 정도다 – 내 인생 자체가 전화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이 당황스러웠다.

제일 힘든 건 우버였는데 다행히 노트북으로 우버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서 우버를 부르면 차를 내가 찾을 수 있지만, 워낙 차가 많은 공항은 너무 힘들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에서 우버를 부르는 건 문제없지만, 특히 LA 공항은 워낙 개판이라서 우버 기사와 문자와 통화를 하면서 서로를 찾아야 하는데, 공항 밖으로만 나오면 와이파이가 끊겨서 기사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지고, 밖에서 차를 못 찾아서 다시 와이파이가 되는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우버를 확인해 보면 이미 기사는 갔거나 공항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노트북으로 우버를 공항에서 처음 부르고 차에 타기까지 거의 40분이 걸렸다.

이후에 내가 찾은 방법은 우버 기사에게 “제가 전화가 없어서 저를 찾아야 합니다. 173cm 아시아 남자, 블루 재킷을 입고 있고, 하얀 노트북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는 거였는데, 이렇게 하면 100% 다 나를 잘 찾았다.

그다음으로 힘든 건, 뱅킹이었다. 투자하기 위해서는 송금 승인을 해야 하는데, 2FA 장치가 모두 분실한 한국 전화의 번호 또는 거기 깔린 인증 앱과 연동되어 있어 납입하는 데 큰 지장이 있었다.

그다음 날, 그리고 다다음 날은 아침 일찍 비행해야 해서 내가 다시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을 새로 산 건 전화를 분실하고 3일 이후였다. 3일을 전화 없이 살 수 있다니! 그리고 그동안 계속 웨이모와 확인해 봤지만, 내가 탔던 차에서 전화기를 찾지 못했다는 답변을 받았고, Find My로 확인해 보니 내 아이폰의 상태는 계속 오프라인이었다.

최신 아이폰을 새로 산 후, SK텔레콤에 전화해서 – 정말 몇 년만에 호텔 전화로 국제 전화를 했다 – 상황을 설명하고 비대면으로 다시 한국 번호로 eSIM을 받아서 설치하면 상황 정리될 줄 알았는데, 웬걸,,,이건 내가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야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아이폰을 새로 샀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더 답답한 상황이 됐다.

결국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미국에서 eSIM을 발급받고, 이 번호로 애플 계정을 완전히 새로 만들고 필요한 앱을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이메일이 이미 과거에 애플 계정을 만드는 데 사용됐었거나, 현재 계정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이메일이 고갈됐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메일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것도 여러 인증 과정을 거치면서 쉽진 않았지만, 결국 전화기 분실 5일 만에 우버와 은행 앱들을 설치하고 업무에 필요한 일들을 제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로밍하던 한국 전화기를 외국에서 잃어버린 이 상황, 그리고 외국에서 전화기 없이 업무를 처리한 5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솔직히 할 만했던 것 같다. 첫날은 너무 불안해서 힘들었지만, 둘째 날부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고, 몇 가지 급한 업무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남은 열흘을 전화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과거에 전화 없이도 잘 살았고, 전화가 없으니까 전화하는 사람도 없고, 카톡도 안 오고, 문자도 안 오고, 불필요하게 페이스북이라 링크드인을 계속 열어보지도 않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하지도 않고, 뭔가 궁금할 때 구글이나 AI에 물어보지도 않고,,,이렇게 살아보니, 기계가 아닌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했고, 이동하면서 내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었던, 정말 인간답게 살았던 짧지만 길었던 5일이었다.

비록 강제적이었지만, 미국에서의 5일 동안의 모바일 디톡스는 내 52년 인생이 들어있던 작은 기계로부터 내 인생을 다시 내가 되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도 나는 핸드폰이 있는 인생이 더 좋은 것필요한 것 같아서, 귀국 후 옛날 번호를 되찾고 다시 이 작은 기계의 노예가 기꺼이 됐지만, 전화기 없던 기간은 나름 행복했고, 혹시나 또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당황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배웠던 좋은 경험이었다.

일단 작은 습관을 만들어라

한국에서는 미국만큼 인기가 있진 않지만,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James Clear의 “Atomic Habits”라는 책이 있다.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인데 혹시 안 읽었다면, 특히 의지가 약한 분들에겐 일독을 추천한다.

이 책은 거창한 습관보단 작은 습관을 만드는 걸 강조하고, 이렇게 계속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으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몸에 쌓인 나쁜 습관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작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 클리어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속 강조하는 건 – 나는 이 분의 인터뷰를 몇 개 들어서 잘 안다 – 습관을 개선하고 싶다면, 일단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습관 자체가 없으면 개선해야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하는 건 작은 습관을 만들고, 작은 습관이 좋은 습관이 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나를 좀 알거나, 이 블로그를 몇 년 동안 읽은 분들이라면 알 텐데, 나는 습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관과 루틴의 동물이다. 스트롱을 시작하고 14년 동안 나는 매일 거의 비슷한 루틴을 지켜오고 있고,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습관은 몸에 잘 배게 꽤 집요하게 노력한다. 습관이 몸에 배게 하려면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Atomic Habits를 읽다 보면 내가 그동안 했던 게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일단 작은 습관을 만들고, 이 습관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노력을 수십 년 동안 한 것이다.

저자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자주 언급되는 예시가 몇 개 있다. 운동을 평생 하지 않던 남성이 운동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헬스클럽에 여러 번 등록했지만, 운동을 습관화하는 데 매번 실패한 이야기가 있다.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매일 헬스장에서 한 시간씩 운동하는 습관을 만드는 건 비현실적이고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분이 선택한 방법은, 일단 한 달 동안 매일 헬스장에 가서 2분만 있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매일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이 몸에 배었다.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을 만든 후에는? 매일 한 시간씩 운동 했을까?

아니다. 그 이후 한 달 동안은 일단 매일 헬스장에는 갔지만, 가서 푸쉬업을 5개만 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이걸 한 달 동안 매일 반복했다. 매일 헬스장 가는 작은 습관을 만들었고, 매일 푸쉬업 5개씩 하는 또 다른 작은 습관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인 운동 습관을 개선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헬스장에서 매일 2분 서 있다 돌아온 건 실제 책에 있는 내용인데, 그 이후 푸쉬업을 5개만 했다는 내용은 내가 그냥 이 남자의 그다음 행보를 상상해 본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평생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달에 책 한 권씩 읽겠다고 다짐하고, 도서를 수십 권 구매하는 걸 나는 주위에서 여러 번 봤다. 그래도 이들은 일 년에 책 한 권도 못 읽는데, 그다음 해에 같은 다짐을 하고, 또 수십 권의 책을 사면서 집에 읽지 않는 책이 계속 쌓인다. 독서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작은 습관부터 만들어라. 일단 책을 항상 가까운 곳에 둬라. 눈에 책이 보이면 더 자주 만지고, 더 자주 만지다 보면 더 자주 열어서 읽게 된다. 책을 더 자주 보고 만지고 여는 작은 습관이 만들어지면, 하루에 딱 두 페이지만 읽는 습관을 만들어라. 더 많이 읽고 싶어도 한 달 동안은 매일 두 장만 읽어라. 두 장만 읽는 습관이 만들어지면, 그 이후엔 페이지수를 늘려라. 이렇게 작은 습관을 만들다 보면, 전반적인 독서 습관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헬스장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는 헬스장 출입문이다. 무게를 치려면 일단 헬스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습관을 일단 만들어야지 운동하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부분은 책 표지다. 책을 읽으려면 일단 표지를 열어서 읽어야 하는데 이 습관을 만들어야지 독서하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

다행인 건 이 작은 습관은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빨리 작은 습관을 만들어보자.

반복할 수 있는 운

내가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꾸준히 듣는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의 진행자 Guy Raz는 매 에피소드를 끝내면서 출연자에게 항상 같은 마지막 질문을 한다.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실력 때문인가요, 운 때문인가요?”

모든 창업가와 그들의 사업 성공 이야기가 다르듯이, 이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변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답변을 종합해 보면 “실력보단 운이 정말 좋았다.” 또는 “운보단 실력이 좋았다.”와 같이 한쪽으로 치우쳐진 대답을 하는 창업가도 있었지만, 대부분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운도 자연스럽게 따랐던 것이라는 대답을 한다.

이 중, 한 창업가의 답변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 분은 운과 실력을 구분하는 본인의 기준은 바로 반복 가능성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본인의 성공을 앞으로 계속 반복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만약 반복할 수 있다면 이건 실력이고, 반복할 수 없다면 이건 운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이후로 자주 생각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운과 실력의 차이를 너무 잘 설명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블로거이자 저널리스트 사라 레이시가 2008년도에 쓴 “Once You’re Lucky, Twice You’re Good”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제목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한 번 엑싯하면 운이 좋은 거지만, 두 번 하면 정말 실력이 있다는 말이고, 역시 성공을 반복할 수 있다면 이건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이 말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운과 실력의 관계와 차이를 우리가 하는 투자에 대입해 보는데, 사업에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실력과 초기 투자에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실력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초기 투자에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도 초기 투자한 회사 몇 개는 성공했지만, 대부분 성공 근처에도 못 가고 다 망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성공한 회사 몇 개는 300개라는 큰 샘플에서 나왔기 때문에 반복이라고 하기엔 그 수나 빈도가 너무 약하다. 만약에 반복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대부분의 회사가 어느 수준 이상의 평타를 쳐야 하는데, 우리가 하는 삼진아웃 or 홈런의 초기 투자는 이 패턴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꾸준한 리듬으로,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초기 투자를 하면서 그 성공을 반복하는 VC가 있다고 치더라도, 이 패턴을 깊게 들어보면, 분명히 반복은 있지만, 이는 반복되는 실력이라기보단 반복되는 운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면, 그래도 창업 시점부터 7년 ~ 10년 정도가 걸리는데, 10년 전에 이 회사의 성공을 알아보고 투자했다고 하는 건 실력의 영역이라기보단 운의 영역이다. 많은 회사가 초기 투자를 받은 시점의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10년 후에 엑싯을 하고, 어떤 회사는 창업팀이 완전히 떠나거나, 팀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런 회사들이 10년 후에 잘 엑싯하면, “우린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라는 전략을 실력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일찌감치 초기 투자엔 실력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온몸으로 배웠다. 스트롱 시작 후 첫 삼 년은 우리가 투자하는 회사마다 모두 싹수가 노래서 과연 엑싯이라는게 우리의 사전에도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쿠팡이 Recomio라는 우리 투자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이건 우리 실력이 아니었다. 나는 실은 Recomio 창업가들에게 잘 안되니까 그냥 문 닫으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쿠팡에 인수된 결과가 과연 나의 초기 투자 실력이었을까?

넥슨의 모회사 NXC가 인수한 코빗도 비슷하다. 한국에 비트코인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2013년도에 우린 코빗에 투자했는데, 솔직히 몇 년이 지나도 싹수가 노랬다. 오히려 이 사업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NXC가 인수했고, 우리에겐 좋은 엑싯이었다. Recomio와 코빗의 엑싯, 이렇게 두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에 우린 실력이 좋은 투자자일까? 오히려 운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카카오가 인수한 Tapas Media가 세 번째 엑싯이었다. 이 또한 숫자로 보면 좋은 엑싯이었다. 하지만, 타파스는 9년 된 회사였고, 솔직히 말해서 우린 그동안 두 번 정도 손실처리를 할지 고민까지 했던 회사다. Recomio, 코빗, 그리고 타파스미디어, 이렇게 세 번이나 반복했으면 이건 실력이 아닐까? 아니다, 운이 세 번 반복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투자 실력을 늘리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을 반복할 방법을 연구한다. 물론, 그 방법을 나는 지금도 찾는 중인데 이것도 운 좋으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