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건 항상 좋은 것

“바빠서”라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변명이지만, 아마도 학교나 직장에서 가장 자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일인데 바빠서 못 한다면 이건 그 사람에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고, 아마도 바빠서 못 한다고 하는 분은 평생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나는 항상 바쁨에 대한 이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요샌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어차피 나는 워라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새벽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일을 하고, 일이 많으면 그냥 시간을 더 투입하고 더 오래 일하면 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웬만하면 해야 하는 일은 하는데, 최근에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일을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바쁘다고 느끼면 정말 바쁜 거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두 개의 상반되는 감정이 내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바쁜 게 좋은 거야.”이고 다른 생각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이다. 안 바쁜 것보단 바쁜 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내 안에 아주 깊게 자리 잡은 신념이라서 이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바쁨이 14년째 매일 반복되면 가끔 지치긴 한다. 우리 회사도 머릿수가 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실력도 늘었는데, 왜 내 업무량은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트롱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곤 한다. 한국의 모든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을 갖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존과 내가 기대했던 거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고, 우리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LA 코리아타운의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매일 출근해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모니터만 멀뚱멀뚱 보고, 각자의 폰만 멀뚱멀뚱 보다가 퇴근했다. 그땐 정말 할 일도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우리에게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우릴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첫 몇 달 동안 점심도 매일 둘이 먹으면서 누가 연락 좀 해줬으면, 점심이나 저녁 미팅이라도 할 수 있으면,,,뭐 이런 간절한 하소연과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무료했고, 답답했고, 매일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을 몇 달 동안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다시는 바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떠오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죽어도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실은 마찬가지다. 일은 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무료했던 그 시절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무리 바빠도. 그래서 이젠 이렇게 계속 바쁘게만 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땐 항상 일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할 일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던 그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 바쁨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결론은 바쁜 건 무조건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하지 말기.

반짝이는 눈

몇 주 전에 아주 행복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 느낌을 글로 남기고 싶었고, 당시 내 생각과 기분을 종이에 펜으로 기록했었다. 이 글은 그 메모를 다시 읽고 당시의 내 생각, 기분, 그리고 느낌을 전반적으로 복기하면서 쓰는, 일종의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과도 같다.

이틀 연속으로 두 분의 창업가를 만났다. 한 분은 우리가 거의 10년 전에 첫 투자를 하고 이후에 여러 번 더 투자한 분이고, 한 분은 우리가 투자하진 않았고못했고, 오히려 우리 펀드에 투자해주신 분이다. 우리가 왜 이 창업가에겐 투자하지 못했냐 하면, 스트롱이 만들어지기 몇 년 전에 창업하신 분이라서 우리의 펀드와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다. 두 분 모두 내가 나름 잘 아는 분들이고, 가끔 보는 분들인데 이들과의 연속 만남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고,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가 됐다.

일단 우리에게 투자한 분은 올해 18년째 본인의 사업을 하는 분이다. 18년 전이면 창업의 시대가 전혀 아니었고, 좋은 학교 졸업한 분이 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주위에서 정신 나간 놈(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시절이었다. 창업 관련 정보도 없고, 투자할 수 있는 돈도 시장에 별로 없고, 아이템도 당시엔 신박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 사업을 시작하면 안 됐는데, 역시 이 분은 내가 아는 모든 창업가와 같이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에 창업했다.

그동안 온갖 업과 다운을 경험하면서 사업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도 대단한데,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로블록스의 데이빗 바주키와 엔비디아의 젠슨 황처럼 창업 초기의 그 에너지와 열정을 18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도 마치 창업 첫날인 것처럼 업무에 몰입하는 건 존경스럽다 못해, 굳이 왜 저렇게 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창업가를 만났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분이 가짜 에너지와 열정을 분산하는지 아닌지는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의 눈을 보면 된다. 이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하면 이건 깊은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흥분, 에너지, 그리고 열정이다. 이 분과 점심을 먹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할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했다.

18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돈도 벌고 명성도 어느 정도 생겼는데 왜 계속 이 힘든 일을 할까? 이건 내가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단계를 이미 지났고, 그냥 이 분의 내면에 있는 자가발전기가 아직도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업을 즐기고, 자신 있고, 평생 하겠다는 굳은 의자와 각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내면의 전투력과 활활 타오르는 불이 두 개의 작은 눈을 통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분은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이다. 사업을 한진 거의 10년이 됐고, 첫 제품은 잘 안돼서 교과서적으론 회사는 망해야 했는데, 당시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피봇팅했고, 이 두 번째 제품은 나름 성공했다. 하지만, 두 번째 제품도 시간이 지나자 정체되면서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때 이 회사는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마음속으로 또다시 생각했다. 그 기간 이 창업가를 만나면 항상 피곤하고, 우울하고, down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은 이성적인 일반인이 아니라 본인이 만드는 틀에 세상을 맞추고 싶어 하는 창업가이고, 역시 다시 한번 피봇팅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는 노력을 최근에 시도하고 있다.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아서 나도 맘속으론 은근히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두 번째 피봇팅을 시도하는 이 시점에 만난 우리 창업가분은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몇 년 동안 번아웃이 됐던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초기화된 것 같았고, 위에서 말한 18년 사업하는 대표님과 비슷하게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오랫동안 정체됐던 구간을 지나면서 사업의 돌파구를 찾았을 때 오는 그 짜릿함과 흥분감이 활활 타오르는 내면의 불이 됐고, 이게 이 분의 두 개의 작은 눈을 통해서 빛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왠지 이 순간과 느낌이 데쟈뷰 같았는데, 그건 이 분이 약 7년 전에 첫 번째 피봇팅을 했을 때 내가 동일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반짝반짝하는 눈빛을 그때 내가 봤는데, 7년 후에 다시 보게 되다니,,,창업한 지 10년 된 분에게 이런 에너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신기했다.

이런 느낌을 내가 이틀 연속 받다 보니, 마치 내가 초사이어인이 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나도 내면의 전투력이 활활 불타오르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창업가들과 항상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하는, 우리 같은 VC만 느낄 수 있는 특권과도 같다.

Founders will be founders.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화려한,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졸x 힘든 이 VC라는 업을 내가 왜 사랑하는지, 그리고 왜 이걸 계속하는지,,,나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값진 이틀이었다.

100년 마인드셋

로블록스의 공동창업가이자 현대 대표이사인 David Baszuki는 이 회사를 2002년도에 창업해서 현재 24년째 운영하고 있다.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어느 정도의 궤도까지 올려놓은 후에 본인이 만든 회사를 떠나거나, 아니면 현업에서 손을 떼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데, 이 분은 오늘도 24년 전과 비슷한 에너지로 사업에 집착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리고 앞으로 로블록스를 몇 년 더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은퇴할 계획은 전혀 없고 가능하면 20년은 더 하고 싶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자주 하는데, 얼마 전에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고, 본인은 남은 인생을 로블록스에 바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엔비디아의 공동창업가이자 현재 대표이사인 젠슨황도 엔비디아를 33년 전에 창업했고,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 젠슨 역시 은퇴와는 너무나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거의 매일 15시간씩, 주말에도 계속 일하고 있다. 엔비디아 초기 멤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젠슨은 창업 초기보다 요새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젠슨은 로블록스의 데이빗 같이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엔비디아를 평생 운영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로블록스의 데이빗 사장이 “저는 로블록스에서 20년은 더 일할 거예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이 인터뷰를 들었을 때 온몸에 진한 전기가 찌릿하게 왔다. 그리고 바로 떠올랐던 생각은 “와,,,나도 이제 저런 사람들에게(만) 투자하고 싶다.” 였다.

한 5년 열심히 일해서 소소한 엑싯 하면 다른 사업을 하거나, 현재 사업으론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 또는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창업가들은 내 주변에 널렸다. 이들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기간만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날 뿐이지, 엑싯하면 그 돈으로 다른 더 재미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그리고 솔직히 스트롱이 투자한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 14년째 투자를 하고 있으니, 스트롱 포트폴리오 중 가장 오래된 회사는 14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 내가 로블록스 데이빗 사장의 말을 듣고 우리가 그동안 투자한 300개 회사의 창업가들을 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한 명씩 떠올리며, 어떤 분이 50년 사업할 마음가짐이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지금까진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이 중 어떤 분들은 50년 ~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땐 단기적인 마인드로 일했다. 솔직히 스트롱을 만들었던 2012년도에 누군가가 나에게 왜 VC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면, 전형적으로 멍청하고 1차원 적인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어요. 남의 돈으로 투자해서, 운 좋으면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는데요.” 그런데 고백하건대, 당시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한 3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인생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VC를 시작했던 이유의 절반이었다. 그리고 그땐 투자하면 3년, 아무리 길어도 5년이면 회사들이 수천억 원에 엑싯 할 줄 알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참 개념 없고 순진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동안 투자를 더 많이 하고, 더 좋은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VC라는 업을 바라보는 내 직업관과 내가 이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와 목적에도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5년 안에 큰 엑싯을 해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드는 창업가들보단,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싶다. 위에서 말한 로블록스의 데이빗 바주키와 엔비디아의 젠슨황 같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해서 돈도 벌고 싶지만, 이들과 함께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그 기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이런 창업가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뾰족하게 다듬어야 한다. 시장의 유행을 따르기보단, 우리만의 사람 중심적인 투자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갈고 닦아야 하는데, 우리도 이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어쩌면 스트롱도 100년 가는 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전의 중요성

요새 한국의 주식 시장은 정말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나도 한국과 미국 주식을 약간 보유하고 있지만, 큰 연구나 분석 없이 내가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기 때문에 한국의 public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조만간 코스피가 1만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샌 한다. 연일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주식 분석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본인들의 이론과 전략을 공개하면서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하는데, 이걸 보면서 맨 먼저 들었던 내 생각은 과연 저 수많은 주식 분석가 중 실제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이다.

내 주변에도 유명한 주식 분석가가 있다. 언론에도 나오고, 여의도에서는 꽤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다. 나도 이 분이 방송에 출연해서 특정 회사와 분야에 대해 본인이 아는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걸 들었는데, 대학교 교수님보다 더 유식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이 분은 주식 투자로 돈을 크게 벌진 못했다. 투자를 안 해서 못 번 건 아니고, 투자하는데, 막상 본인이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수익을 만들진 못했다. 그 회사의 임직원보다 본인이 분석하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꿰뚫고 있고,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어떻게 주식 투자로 돈을 못 벌 수가 있을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대학원을 6개월 동안 매우 짧게 다녔고, 이때 경제학에 대해 조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은 꽤 재미있는 학문이긴 하지만, 경제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법칙과 원리를 담는 학문이라는 이론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워튼 경영대학원에서 그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수업을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아는 상식은 실물경제에 거의 적용할 수가 없는 죽은 지식이라는 걸 매번 느꼈다. 이론가들이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 이론 뒤에는 수많은 비현실적인 모델링과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의 실생활에는 적용할 수가 없는데, 많은 경제학자는 이런 이론이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물경제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본인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한다. 왜 그럴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은 투자의 세계도 비슷하다. 투자를 책으로 배우고, 이론적으로만 아는 가짜 VC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 투자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벤처투자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다. 이 기술은 이래서 좋고, 저 기술은 저래서 미래가 없고, 이 회사는 이러므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들의 말은 하나씩 따져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이분들에게 본인의 포트폴리오 중 성공한 회사에 관해 물어보면, 말에 비해 실제 투자는 거의 안 했거나, 투자는 좀 했지만, 성공한 회사는 하나도 없다. 벤처 투자 세계도 실전으로 움직이지, 이론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 수치, 그리고 데이터를 맹신하진 않는다.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업은 하면 안 되고, 이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했을 때 우리의 경쟁사가 우리보다 말도 안 되게 경쟁우위를 갖는 시장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또는 이와 반대로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무조건 해야 하는 사업은 해야 하고, 우리가 경쟁사를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시장에는 들어가야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결정이라서, 일단 해보고 부딪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너무 많은 분이 이론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데,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결과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창업가들이 좋다. 이들은 이론도 참고하지만, 결국 모든 건 실전에서 결정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 절대로 승산이 없는 분야에서 조 단위 사업을 만들고,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달걀로 바위를 쳐서 정말 바위에 금을 내는 분들을 나는 봤고, 몇 명에겐 우리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실전이다. 이론 뒤에 숨지 말고, 일단 해보는 걸 권장한다.

가족같이 좋은 팀워크에 대해서

기술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고, 산업이 바뀌어도, 내가 굳게 믿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결국엔 사람이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투자를 좀 해 본 분들은 전반적으로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실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나쁜 팀이 하면 잘 안되고, 아무리 나쁜 아이템이라도 좋은 팀이 하면 잘 되는 걸 나는 정말 많이 봤다. 그리고 같은 시장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도 어떤 회사는 잘 되고, 어떤 회사는 망하는데, 이 둘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결국, 이걸 하는 사람이라는 게 내가 매번 내리는 결론이자, 매번 맞게 판명되는 결론이다.

그래서 우린 일인 창업가보단 팀에 열광한다. 요새 맥미니로 코파운더와 직원을 대체하는 AI 창업가들이 정말 많아졌지만, 나는 결국엔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고차원적이고 미묘한 예술이라서 혼자 하면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일인 창업가가 AI 에이전트와 할 수 있지만, 결국엔 사람을 모아서 팀을 만들어야지 좋은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우린 그냥 팀보단 좋은 팀에 열광한다. 똑똑하고, 에너지 넘치고, 경쟁심에 불타고,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 할 수 있는 팀을 만나면 나도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같이 일할 수만 있다면 VC로서 그 어떤 위험, 귀찮음,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만드는 그런 팀을 만나고, 이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건 VC의 가장 큰 특권이다. 내가 존경하는 VC 중 하나인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가 공개적으로 항상 이야기하는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팀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라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럼 어떤 팀을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팀이 좋은 팀인가?

우리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건 이런 팀을 만드는 창업가를 만나는 것이다. VC마다 생각하는 좋은 팀의 기준과 이미지는 다를 텐데, 나는 좋은 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이들의 관계이다. 관계의 정의도 광범위한데, 이 중에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들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리고 얼마 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는지이다. 이건 그냥 단순한 예시인데 –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단순화하긴 어렵다 –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교에서 몇 년간 룸메이트를 했고, 이후 같이 창업했거나 같은 직장에서 수년 동안 동료로 근무한 팀은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팀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 다 똑똑하고, 일 잘하고, 에너지 넘치는 건 기본이다.

이런 분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고, 서로에 대해 최고의 면과 최악의 면을 모두 봤고 경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또 같이 창업해서 지지고 볶기를 10년 이상 하길 선택했다면, 이 팀워크는 잘 안 깨지고 오래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팀을 선호한다.

아니, “선호했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요샌 내 기준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같이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던 팀은 기본적으론 좋은 팀이라서 적극적으로 만나고 검토하는 내 기준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이 팀이 이전에 같이 했던 사업 성공의 여부가 내 기준에 새로 추가됐다. 조 단위의 회사를 만들었든, IPO를 했든, 아주 작은 엑싯을 했든, 그 성공의 크기보단, 실제로 이 팀이 같이 개고생하면서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서 팔아봤고, 그 결과로 매출을 만들었는지가 내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다. 만약에 이런 경험이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창업과 사업을 통해서 그 성공의 경험이 증폭되고, 돈을 벌겠다는 독사 같은 의지가 점점 더 강해지는 팀이라면 나는 이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는 팀이라면, 이젠 나는 이런 팀은 좋은 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런 분들이 계속 뭔가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 내 생각은, 이런 분들은 계속 같이 뭔가를 할 확률은 높지만, 여전히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건 힘들 것이라는 방향으로 굳어가고 있다.

이런 팀은 인간적인 팀워크는 매우 좋다. 정말로 가족 같은 팀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꽝일 확률이 높다.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냈고, 너무 오랫동안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팀원들이 즐기는 건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같이 풀어가는 과정보단 그냥 서로 함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면서 같이 일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정말로 가족 같은 팀워크를 자랑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족은 돈을 벌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팀원분들이 서로 친한 건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서로 편해서 같이 일하는 것을 즐기는 것보단, 서로 좀 불편해도 돈을 버는 사업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그냥 팀원들과 함께하는 게 좋아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지만, 의미 있는 매출이나 사업을 한 번도 못 만들어 봤다면, 이건 내가 원하는 투자할 만한 좋은 팀, 또는 투자할 만한 좋은 팀워크가 아니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매출의 압박이 없는 연구소를 같이 차리든지, 아니면 아예 가족이 되는 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