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 1표

민주주의에서는 그 구성원의 위치, 능력, 재력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즉 1인 1표 원칙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고 이게 적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재력이 가장 중요하고, 돈이 표이기 때문에 1원 1표 원칙이다. 한국과 미국 회사에 동시에 투자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한국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게 몇 개 있는데, 그중 가장 바꾸고 싶은 건 한국 표준 투자 계약서의 투자자 동의 내용과 방식이다.

투자는 자본주의 시장의 꽃 중 하나인데, 현재 한국 표준 투자 계약서의 투자자 동의 사항 내용만큼은 자본주의보단 민주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 같다. 쉽게 말하면, 회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웬만한 사항에 대해서는 모든 주주의 전원 동의를 받아야 하는 1인 1표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회사에 15억 원을 투자해서 지분 15%를 보유하는 투자자나 1.5억 원을 투자해서 1.5%를 보유하는 투자자나 회사에 대한 주주의 권리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게 항상 불만이고, 내 주위의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면서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한 VC들도 불만이다. 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면, 지분이 작은 다른 주주보다 회사에 대한 입김이나 결정권이 더 세야 하는 게 당연해서 현재 시스템의 1주주 1표 원칙은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0년 넘게 한국에 투자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걸 지금 이야기하는지 물어본다면, 벤처 시장 상황이 좋아서 돈도 넘치고, 회사들도 (겉으로는) 성장할 땐, 주주들이 회사가 하려는 걸 크게 반대하는 상황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회사 대표가 스톡옵션을 부여하거나, 사업 방향을 바꾸거나,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자산을 매입하거나, 영업에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을 사용하면 그냥 웬만하면 따지지 않고 전원 동의를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서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작은 사항 하나에 대해서도 어떤 주주들은 동의하고, 어떤 주주들은 동의하지 않아서 회사가 힘들어하는 걸 너무 많이 보면서 1인 1표 계약서에 대해 매우 큰 회의감이 들고 있다.

더 많은 투자금을 더 많은 주주로부터 받으면서, 사소한 결정에 대해 모든 주주의 동의를 받기 위해서 사업할 시간도 없는 대표이사가 거의 한 달 동안 시간을 낭비하는 걸 보면서 요새 이런 회의감이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주로 투자사의 지분 10% 내외를 확보하는데, 나는 10%를 가진 스트롱과 1%를 가진 다른 투자자의 의견이 달라서 스톡옵션 발행하는데 투자 계약서상 필요한 동의를 받기 위해 두 달이 걸린 경우도 봤다. 투자자의 90% 이상이 동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주주의 권리를 한 번 정리하는 주주간계약서를 작성하게 되고,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로 가장 최신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투자자의 주도하에 진행되는데, 주로 각각의 투자자가 가진 다른 종류의 주식의 권리를 통일하고, 회사 의사 결정 과정을 더 단순하게 정리하는 게 이 계약서의 목적이다. 미국의 경우 주로 이사회 위주의 경영과 결정, 그리고 웬만한 동의 사항도 이사회에서 결정하거나 지분 과반수 찬성/반대로 주주간 관계를 정리하는 걸 자주 봤다.

한국은 이 주주간계약서를 통일하는 것도 힘들다. 이전에는 1인 1표 체제라서 작은 주주나 큰 주주나 가진 권리가 거의 동일했는데 주주간계약서를 체결한 후에는 작은 주주의 권리는 거의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주주가 주주간계약서 내용에 합의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고, 어떤 주주는 주주간계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경우도 봤다. 이 회사의 경우, 우리가 최대 주주 중 하나였는데, 결국 최종 주주간계약서 내용을 봤을 때 처음에 머릿속에 그렸던 아주 깔끔한 주주간 교통정리가 잘 안돼서 아쉽긴 했다. 후속 투자를 더 받을 때마다 주주간 교통정리를 하다 보면 점점 더 이사회 중심 경영과 1원 1표의 의사결정 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미국에서는 우리의 권리를 포기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새로운 라운드가 진행되면 기존 우선주 주주들은 본인들의 지분이 희석된 만큼 주식을 더 구매할 수 있는 pro rata 권리가 있는데 가장 최근 라운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서 최대 주주가 된 새로운 VC가 이번 라운드는 본인만 투자하고 기존 주주들은 빠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후속 투자를 못 한 적도 있다. 어쨌든 지분이 더 많은 투자자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는 게 자본주의의 규칙이고, 계약서상의 우리 후속투자 권리를 계속 주장하면 본인들이 투자하지 않겠다고 협박? 했기 때문이다.

가끔, 같은 라운드에 투자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투입하는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에 비해서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information rights’라는 회사의 재무나 운영 정보를 투자자가 정기적으로 받고, 필요시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계약서상 이 권리가 없으면, 회사 대표에게 그 어떤 사업 관련 내용을 달라고 할 수 없고, 달라고 해도 회사는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여기에도 1원 1표의 냄새가 매우 강하게 난다.

한국의 경우, 한국벤처투자의 표준계약서 이슈도 있고, 상법도 미국과는 다르지만, 자본가라면 본인에게 불리하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한 다른 주주가 더 막강한 권리를 갖는 1원 1표 원칙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갈까?

두 달 전에 바이럴 하게 공유됐던 Citrini Research의 섭스택 보고서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때문에 당시에 전 세계 주식시장과 테크 세계가 발칵 뒤집혔었다. 꽤 긴 내용이라서 실은 내 주변에 이 보고서를 완독한 분들은 거의 없고, 아마도 대부분 AI를 돌려서 요약된 내용만 봤을 것 같은데, 대략 어떤 내용이냐 하면, 매우 가까운 미래에 AI가 너무 발달해서 인간의 지능 자체가 commodity가 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인간의 생산 활동은 대폭 감소하지만, 오히려 AI 생산은 늘어나면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소득분배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지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가상 시나리오라곤 하지만, 모두가 다 우려했던 미래를 꽤 논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해서 그런지 주식시장,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가 박살 났었다.

이후 시장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AI 툴들이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의 주가는 – 특히 B2B – 계속 타격 받고 있다. 과거에는 개발 능력이 없는 회사에서 기꺼이 돈을 내고 다른 회사의 B2B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지만, 이젠 바이브 코딩을 통해 누구나 다 본인이 필요한 정확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고, 바이브 코딩 툴이 더 발전할수록 이젠 많은 회사들이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B2B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제 회사는 사람이 예전만큼 필요 없고, 특히나 low level의 반복 업무를 하는 신입 사원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반복 업무야말로 사람보단 기계가 더 정확하고 불평불만 없이 하루 24시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AI가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온 후부터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던 질문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기술이 일자리를 없앨까?”

요새 거의 매일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지만, 실은 아직도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똑똑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칠 순 없지만, 현재로서 내 대답은 “Yes, but no”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많은 업무가 AI로 인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고, 실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나같이 코딩을 전혀 못 하는 사람도 내가 필요한 몇 가지 기능을 혼자서 만드는 시대에 – 그 전에는 돈 주고 외부에 맡기거나, 우리 회사에서 나름 tech를 잘 아는 동료분에게 부탁했다 – 단순히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수작업과 반복 업무는 이젠 사람이 하기엔 너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직종은 앞으로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우리 같은 VC 회사에서도 주니어 심사역이 주로 하는 일이 시장과 회사를 분석하는 일인데,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 소화, 이해하는 건 사람보단 기계가 더 잘하는 업무라서, 나는 아직도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업계 분들이 ‘AI 심사역 에이전트’가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워라벨 따지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심사역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말도 공개적으로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는 건 맞다. 하지만, 모든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앤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 의해서 거의 완벽하게 대체되는 건 확실하지만, 일머리가 있고, 일을 잘하고,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에겐 아마도 다른, 더 전략적이고 고차원적인 일감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마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고, 오히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주어진 일만 하고, 일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은 “AI가 당신의 일을 대체해서 우린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통보를 회사로부터 듣고 해고될 것이다. 실은 어떤 사장님들은 AI가 오히려 그동안 일 못하고, 조직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던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새 내 건강 관련 모든 데이터를 AI에 입력해서 다양한 건강 전략과 전술을 만들고 상황에 따라 계속 수정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모든 걸 기계에 물어본다. 더 먼 미래에는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의사가 없어질까? Maybe. 하지만, 무능한 의사만 사라질 것이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고,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고, 뭘 물어봐도 짜증 내고, 최신 의학 트렌드에 관한 공부는 전혀 안 하는 의사는 확실히 AI로 인해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매일 실천하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절대로 AI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기술을 활용해서 이미 일을 잘하는 본인들의 위치를 더욱더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요새 AI 때문에 전 국민이 거의 변호사 뺨칠 정도로 법학 지식이 충만하다. 내 주변 친구 변호사들도 AI가 본인들의 직업을 뺏어갈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친구들은 무능한 변호사들이다. 그리고 무능한 변호사는 AI가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을 호구로 보고, 불필요한 법률 조언을 제공하면서 돈 벌 궁리만 하는 그런 변호사들인데, 이미 이들은 AI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좋은 변호사는 오히려 기술을 활용해서 원래 잘하던 일을 더 잘할 것이고, 더 많은 일감을 처리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오히려 AI가 이미 대체되고 없어져야 할 무능한 인력을 시장에서 한번 깨끗하게 청소해 줄 수 있는 촉매라고 생각한다. 항상 공부하고, 항상 호기심 있고, 항상 열심히 일하고, 항상 일 잘하는 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현장 중심주의

약 한 달 전에 유럽에 짧게 출장을 다녀왔다. 4일 동안 3개국을 방문했던 빡센 일정이었고, 왜 스트롱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기관이 나에게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은 미국 펀드인데 한국에 투자하고 있죠? 그럼, 대부분의 팀이 미국에 있나요 한국에 있나요?” 였다.

우린 미국 펀드이지만 한국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이 한국에 있다고 했고,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지 물어보니 최근에 이들이 만난 유럽의 VC 이야기를 해줬다. 이들의 전략은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건데, 의사결정 하는 파트너들은 서로 유럽 다른 나라에 뿔뿔이 거주하고 있어서 이 VC에 출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VC에겐 결국 창업가와 경영진이 제일 중요한데, 어떻게 피투자사 본사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는 설명도 해줬다.

아무리 미국에서의 네트워크가 좋아도 물리적으로 거기 없으면 시장과 창업가들과의 미세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생성되지 않아서, 위에서 말한 미국에 투자하지만, 핵심 투자팀이 유럽에 있는 VC의 경우 이들에게 미국의 “좋은” 딜이 넘어왔을 시점엔, 이미 미국 현지 수십 명의 VC가 그 딜을 봤고, 어쩌면 수십 명이 패스했을지도 모르는 “나쁜” 딜일 확률이 높은데, 이 딜이 나쁘다는 걸 그 유럽 VC만 모르고 투자할 위험이 크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하지만, 현장에 없으면 절대로 모르는 작은 지식과 통찰력을 간과하면 좋은 투자가 힘들다는 본인들의 믿음을 강조했다.

나는 이렇게 흑백논리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투자팀은 모두 한국에 있지만, 동남아나 미국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고, 팀은 모두 미국에 있지만, 아시아 투자만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VC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하는 말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고,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극초기 VC는 투자팀이 그들이 투자하는 시장에 물리적으로, 그리고 full-time으로 상주해야지만 성공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VC라는 업 자체는 껍데기만 보면 상당히 글로벌한 업 같지만,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면 글로벌한 업이 아니라 실제로는 로컬한 업이고, 본질을 현미경으로 보면 로컬 하다못해 하이퍼로컬한 업이다. 특히나 우리 같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극초기 VC에겐 투자라는 업은 완전히 하이퍼로컬 한 사업이다.

한 지역의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 지역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그곳의 창업가/투자자/기업 커뮤니티와 깊숙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장을 잘 알 수 있다. 본인이 투자하는 그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숨 쉬고, 사귀고, 어울리고, 투자해야 한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유럽의 투자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현장 중심주의는 우리가 하는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집중의 중요성

이 블로그에는 1,600개 이상의 포스팅이 있다. 태그를 달긴 했지만, 아주 자세하게 분류하지 않아서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이 정확히 몇 개 있는지 모르지만, 꽤 높은 비중의 글이 ‘집중’ , ‘뾰족한 사업’ , ‘하나만 잘해라’ 부류의 내용이다. 나는 그만큼 사업이든 인생이든,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인 작은 스타트업이 경쟁사를 이기고, 대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 뭔가 하나라도 잘 해야 하는데, 작은 회사가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계속하면서 그 작은 일만큼은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집중이 제일 중요하다.

최근 글에서도 썼지만, 요샌 집중, 끈기, 반복 등, 이런 것들의 의미가 점점 더 희석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 솔직히 이런 사회적인 현상이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깝고 슬프다. 내가 창업가들과 만나서 일단 하나만 하자 또는 아무리 작아도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말을 하면 공감하는 분들도 있지만, 하나만 해서는 크게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우리에겐 하루에 24시간밖에 없지만, AI 에이전트들을 활용하면 24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공식은 AI 시대 이전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요샌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어쨌든 이런 고민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WSJ에서 오픈AI와 앤스로픽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의 핵심이 집중(=focus)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나름 객관적인 시각으로 좋은 기사를 발행하는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면, 어느 정도의 fact checking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양사의 의견도 분명히 녹아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 짧게 공유한다.

요새 AI 분야에서 개발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제품이 앤스로픽의 Claude Code인데 이건 우연히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회사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이런 개발자 대상의 B2B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먼저 사업을 시작하고 ChatGPT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오픈AI는 일반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었고, 이후에 모든 걸 하려고 돈도 너무 많이 썼고, 사람도 너무 많이 채용했다. 이미지 생성, 영상 생성, 웹 브라우저, 광고, 하드웨어 등 AI 슈퍼 앱이 되기 위한 새로운 제품을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밸류에이션은 올라가고 시장은 열광했지만, 회사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면서 “모든 걸 다 하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함정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전략을, 땅콩버터를 너무 얇게 바르는 전략이라고도 한다.

오픈AI가 B2C 분야에서 구글의 Gemini와 경쟁하면서 출혈은 더 심해졌는데, 이 와중에 앤스로픽은 조용히 B2B 분야만 계속 파고들었다. 앤스로픽 경영진은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보단 개발자와 기업 사용자들을 위한 AI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더 많은 A급 제품을 만들기보단 더 적은 A++급 제품을 만드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런, 날카롭고 뾰족한 전략이 회사의 DNA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클로드 Code라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로드 Code의 폭발적인 시장 반응을 관찰하면서 기업 고객들의 목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개발 인력이 없는 기업들도 클로드 Code가 필요하다는 피드백이 계속 나왔고, 이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또 다른 걸작인 클로드 Cowork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기사에 의하면 현재 앤스로픽 매출의 90%가 기업 고객들에게서 나온다고 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실은 이런 집중의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회사는 애플이고, 이 DNA를 회사에 심은 건 고 스티브 잡스였다. 이젠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인이 아는 그의 혁신에 대한 정의인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집중이 무엇인지 깔끔하게 설명해 준다. 애플은 이 DNA를 계속 잘 실행하고 있고, 팀 쿡 대표의 이 말의 개정된 버전이 “You’re saying no to really, really good ideas so you can make room for the great ones.(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많지만, 위대한 아이디어를 위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에 ‘아니요.’라고 해야 한다).” 이다. 많은 분이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의 혁신은 이제 끝났다고 하지만, 실은 남들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하지 않고, 애플이 정말로 해야만 하는 일만 하는 이런 초집중 전략이 겉에서 봤을 때 잘못 해석된 게 아니냐는 생각을 나는 한다.

솔직히, 어떤 사업을 하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이 선택과 집중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AI로 인한 무한 가능성의 시대가 오면서 이젠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모든 걸 다 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어떤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게 정말 중요해졌다. 내가 이 말을 쓰긴 했지만, 참 어려운 말이고, 어려운 세상인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창업가들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백만 가지 요소들의 유혹을 참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인 것 같다.

내가 안 하는 것들

얼마 전에 끝난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10위 안에는 못 들었지만, 총 10개의 메달을 따면서 나름 선방했다. 으레 그렇듯이, 선수들이 귀국한 후에 메달리스트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결승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운동은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지 등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하는 걸 몇 번 봤다.

내가 모든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본 건 아니지만, 메달리스트들에게 물어보는 공통된 질문들이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뭔가요?” ,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습관 같은 게 있나요?” , “바빠도 매일 꼭 챙겨 먹는 게 있나요?” 등과 같이 매일 하는 것, 또는 항상 챙기는 것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은 사회자나 스태프가 선수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이 분은 뭘 먹고, 뭘 입고, 어떤 운동을 하고, 누굴 만나고, 자기 전에 하는 어떤 습관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챔피언의 하루’를 촬영한다.

실은, 이런 포맷의 인터뷰와 프로그램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워낙 흔한 거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보는데, 나는 오히려 위대한 챔피언들을 챔피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이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보다,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운동선수들에게 “당신이 절대로 하지 않는 건 뭔가요?” , “당신이 절대로 먹지 않는 게 있나요?” ,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절대로 만들지 않았던 습관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데 난 오히려 이런 것들을 공개 방송에서 물어봤으면 한다.

실제로 위대한 운동선수, 사업가, 군인 등과 같이 한 분야에서 남들보다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분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면, 이들이 강조하는, 현재 본인들의 위치에 오르는 데 가장 중요했던 건, 반드시 지키고 했던 루틴보다 반드시 하지 않았던 루틴과 습관이라고 하는 걸 나는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엔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소식과 운동으로 건강을 지킨다는 공통적인 대답을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건 그 대답의 이면에 있는 과식하지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 같다. 즉, 뭘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 한가지씩만 비결을 댓글로 공유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