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미국에서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고 있는 신생 VC 파트너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전에 꽤 큰 VC에서 심사역을 몇 년 하다가 독립해서 이제 본인의 펀드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요새 대부분의 VC와 비슷하게 “AI first, AI only”를 외치면서 열심히 AI 회사들만 검토하고 있었다.
스트롱은 왜 AI에만 올인하지 않고 큰돈 안 되는 다른 분야에도 투자하는지 물어봐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 철학, 그리고 전략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특정 분야를 선택한 후,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가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down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냥 좋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bottom-up 방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AI에만 투자하진 않는다는 점을 잘 설명했다. 그리고 AI가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더 빨리 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AI가 아닌 사업이 나쁜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해왔듯이 모든 분야를 보면서 좋은 창업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보낸다고 했다.
이 분이 이전 회사에서는 소비재와 B2C에도 활발하게 투자한 걸 알기 때문에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화장품, 먹는 것과 같은 소비재 스타트업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Kihong. 소비재 회사는 이제 끝났어. 과거에는 잘 됐고, 돈을 벌었는데 이제 이런 회사들에 투자하는 건 stupid 한 전략이야.” 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시장 자체가 너무 포화돼서 이 무한 경쟁에서 이기고 크게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몇 년 전과 같이 소비재 회사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설득력 제로인 의견이고, 이 분도 아마도 여기저기서 듣거나 읽은, 남의 의견을 나에게 앵무새같이 따라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논리는 AI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오히려 AI 시장이 더 포화된 것 같은데?”라고 내가 반박하니 AI가 미래이고, 완전히 다르다는, 역시 설득력 제로인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실은, 이 분이 이야기한 것 중 틀린 내용은 없다. 소비재 시장은 정말로 포화됐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 대부분 제품을 보면 차별점도 안 보이고, 뭘 구매해야 할지 선택 장애가 오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소비재이다.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 매일 먹는 음식, 매일 입는 옷과 신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10년 전만 해도 VC 자금이 넘쳐흐르던 소비재 분야에서 요새 투자금이 거의 메말랐다는 이 분의 말도 사실이다.
그럼 왜 스트롱은 병신같이 계속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 세련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답은 바로 아무리 시장이 작고, 아무리 시장이 포화되고, 아무리 시장에 돈이 없어도, 할 놈은 항상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렇게 브랜드가 많고, 매일 크고 작은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장이 정말 포화됐고, 껍데기만 다른 대부분의 제품은 차별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박 터지는 시장에서도 해마다 1,000억 원의 매출을 하는 여러 개의 새로운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먹을게 이렇게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서 아직도 대박 터트리는 좋은 회사들이 계속 새롭게 생기고 있다. 시장과는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는 계속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고, 이 중 극소수는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회사만 살아남고 성공하는 논리는 소비재나 B2C 분야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할 놈은 하기 때문이다. 이건 시장과도 상관없고, 돈과도 상관없다. 할 놈은 그냥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다. 이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고, 이 분야의 창업가를 계속 만나고,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성공하는 투자를 하고 있진 않지만.
할 놈은 항상 하고, 못 할 놈은 항상 못 하고, 안 할 놈은 항상 안 한다. 할 놈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