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을 만드는 AI

우린 인바운드로 오는 콜드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어보고 확인하는 몇 안 되는 VC 중 하나다. 충분히 많은 회사, 창업가와 만나고 있고, 우리가 아는 네트워크에서 – 이미 투자한 300개가 넘는 창업가들의 소개, 프라이머를 통한 소개, 다른 VC의 소개 등 – “따뜻한” 소개를 워낙 많이 받아서 굳이 모르는 창업가들이 보내는 사업계획서를 안 봐도 검토해야 할 사업이 넘쳐흐르긴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되도록 전부 다 읽고 검토하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이유는, 누가 어디서 언제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분들의 소개만을 통해서 창업가를 만나거나 사업을 검토해서는 절대로 언더독이나 우리 기준의 바퀴벌레 창업가를 충분히 만날 수 없다. 이 바퀴벌레들은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힐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메일을 읽고, 모든 사업계획서를 검토한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pitch deck을 보내달라고 썼기 때문이다. 콜드이메일을 절대로 안 읽을 거면, 웹사이트에 이런 헛소리를 쓰면 안 된다. 우리에게 연락하면 우리가 자료를 검토하고,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우리의 얼굴인 웹사이트에 써 놨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언행일치이고, 시간을 들여서 우리에게 연락하는 창업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콜드 연락이 오는 이메일 10개 중 추가 질문이 있거나 미팅 관심이 있어서 내가 답변하는 건 2개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8개도 다 검토하지만, 패스하겠다는 답변은 굳이 안 한다.(이건 이분들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좀 많은 회사를 검토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매번 뭐라도 배우는 게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는다읽었다.

요샌 예전처럼 다양한 회사의 deck을 흥미롭게 못 읽고 있는데, 망할 놈의 AI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자료의 4분의 1 이상이 50% 이상 AI로 만든 사업계획서인데 정말 못 읽다 못 해서 못 봐줄 정도로 조잡하고 허접하다. 첫 페이지의 누가 봐도 AI로 만든 이미지와 두 번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은 이 자료를 더 읽고 싶은 욕구를 확 떨어뜨린다. 본문 내용은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이미지와 내용을 기계로 만들어서 그런지 일단 말 자체가 장황하고 요점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 이런 자료를 읽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나고, 당연히 이런 책임감 없는 자료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보낸 창업가와 안 만난다.

멋지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만드는 건 고도의 실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정말 못 만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든 슬라이드는 대부분 텍스트 위주다. 그나마 비주얼이 있는 ‘예쁜’ 내용은 우리 팀 동료분들이 만들어 준 거다. 이렇게 나같이 자료를 못 만드는 사람이 더 설득력 있고 눈이 시원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AI만큼 좋은 툴이 없다. 나는 아직은 자료를 만들 때 AI를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만든 엄청난 자료를 나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말 그대로 AI의 ‘도움’을 받았다. 기본적인 내용, 골격, 흐름 등과 같이 좋은 자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는 모두 다 사람이 엄청나게 고민하고 생각한 후에 한 땀 한 땀 준비했고, AI는 이 재료로 만들어진 슬라이드를 더 시각적이고 돋보이게 거들어 줬을 뿐이다.

내가 요새 본 많은 자료는 저자의 창의성은 아예 안 보이고, 과연 이 분이 AI가 만든 내용을 검토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엉터리였다. 며칠 전에 본 어떤 자료는 내가 혼잣말로, “아 씨,,,AI 좀 적당히 사용해라”라고 할 정도였는데, 바로 지웠고 그 창업가에겐 답변도 안 했다.

AI가 정말로 우릴 생산적으로 만들까? AI가 정말로 우릴 똑똑하게 만들까?

가끔 나는 AI가 우릴 병신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고민하면 우리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 그리고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 이젠 이것마저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스스로 거부하고, 스스로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위에서 말한 사업계획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메일도 이젠 AI로 작성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근데 AI로 작성한 이메일은 첫 줄만 읽어도 티가 난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발신자가 직접 작성한 후 AI의 도움을 적당히 받은 게 아니라, 전부 다 기계가 쓴 걸 알게되자마자 더 이상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건 이메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낭비하는 AI 쓰레기(=슬롭)이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들이 보내는 월간 비즈니스 업데이트도 요샌 점점 더 많은 대표들이 AI로 만들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두 줄만 읽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AI로 만든 월간 업데이트는 수치는 정확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그 회사의 대표가 한 달 동안 뭘 했고,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배움이 있었고, 스트롱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내용을 글로 쓰려면 차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즉,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요샌 아무도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도 다 AI 슬롭이다.

소셜미디어와 블로그 포스팅도 마찬가지다. AI가 작성한 콘텐츠는 그냥 보면 안다. 일단 내용이 장황하고 포인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실제 생각과 영혼이 실린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슬롭이다. (참고로, 내가 쓰는 모든 블로그는 100% human thought, created and written이다.)

AI를 사용해서 더 똑똑해지자. 토큰 낭비하면서 더 병신이 되지 말고.

VC의 도덕성

Fizz와 Sidechat이라는 대학생을 위한 익명성 앱에 관한 이런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다. 어떤 VC가 두 회사를 모두 만났고, Sidechat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경쟁사인 Fizz를 만나면서 기밀정보를 빼냈고, 결국 본인이 투자한 Sidechat과 공유했다고 Fizz로부터 비난받는 내용의 글이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자주 공론화되진 않지만, 실제로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서 공감할 수 있었던 기사다.

비슷한 일이 우리 투자사에도 종종 발생한다. 투자받는 건 어떻게 보면 확률게임이라서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나면 우리 사업을 이해하고, 우리 사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좋은 창업팀이 좋은 제품으로 좋은 사업을 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펀드레이징을 좀 해봐서 투자자들과의 대화에 익숙한 창업가는 사전에 그 투자자에 관해 공부를 한다.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어떤 단계에 투자하는지, 그리고 혹시 우리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경쟁사에 투자했는지 반드시 사전에 확인한다. 만약에 우리 경쟁사에 투자했다면, 이들에겐 아예 연락을 안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료가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아무리 도덕성이 높은 투자자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와 공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도덕성이 떨어지는 투자자들은 이 회사와 미팅까지 하고, 아주 깊은 질문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수치와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 투자자가 경쟁사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창업가는 그가 물어보는 질문의 깊이와 전문성에 감탄하고   비슷한 회사에 투자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사업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꼭 이분에게 투자받고 싶은 마음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깊은 이야기까지 다 공유한다. 결국 그는 이 정보가 모두 다 고스란히 경쟁사 대표에게 갔다가 받혀졌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물론, 이래서 회사가 망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배운 영업비밀을 칼만 안 들은 날강도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정말 기분 상하고 스트레스받는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야심차게 준비한 여러가지 전략을 경쟁사가 먼저 구사해서 문을 닫는 경우도 보긴 했다.

이런 상황을 전적으로 방지하는 건 쉽지 않지만, 나는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경우, 위에서 말한 대로 자료를 전달하기 전에 그 VC에 대한 숙제를 잘하고 경쟁사에 투자했거나, 아니면 이들이 우리와 비슷한 사업을 여러 개 검토하고 있는지 시장의 소문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면 다른 창업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이미 투자자가 있다며 이들에게 새로 연락하려고 하는 VC에 대한 레퍼런스와 평판 체크하는 걸 권장한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창업가보단 VC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하고, 아주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투자자는 어떤 기준이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스트롱의 원칙 몇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콜드이메일로 자료를 받았는데 누가 봐도 우리의 포트폴리오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사업이면 자료 열람 후 삭제한다. 그리고 이 창업가에게 이미 우리가 투자한 회사와 경쟁하기 때문에 검토할 수 없다고 답변하면서 자료의 보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해 준다. 단, 우리 투자사 대표에게 혹시 이런 회사가 있는 걸 모르면 참고하라고 회사의 웹사이트는 알려준다. 자료는 절대로 공유하지 않는다.(여기서 가끔 아쉬운 점은 인바운드로 온 자료의 경쟁사 슬라이드에 우리 투자사 이름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창업가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고, 만약에 우리가 도덕성이 결핍됐다면 우리 투자사 대표와 자료를 그대로 공유할 수도 있고, 솔직히 이럴 경우 자료를 보낸 분도 할 말은 없다).

누군가 소개해 준 회사의 자료를 봤는데, 우리 투자사의 경쟁사인 것 같지만 확실치 않다면, 그리고 사업과 창업가가 흥미롭다면, 투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흥미로운 분이고 흥미로운 사업인 것 같아서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지만, 우리가 이미 이런 회사에 투자했는데, 귀사와 경쟁하는 사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희와 미팅이 껄끄럽다면 솔직하게 알려주시면 아쉽지만, 미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자료의 보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로 저희 투자사와 공유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경쟁의 위험이 없기 때문에 흔쾌히 미팅하자고 한다. 미팅 후 이 사업이 우리 포트폴리오사와 경쟁구도를 만들지, 아닐지에 대해선 우리가 판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한다.

가끔 우리 투자사와의 경쟁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회사인데 막상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경쟁이 예상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첫 번째 미팅 이후에 발견할 수도 있지만,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한 후에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이 들면 그 자리에서 투명하게 우리의 우려를 공유하고, 정중하게 사과하고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는다. 실은 세 번 정도 만난 후에 이런 경쟁의 우려가 생긴 적도 있고, 이 소식을 이 시점에 접하는 창업가로서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여러 번 만난 후 많은 정보를 빼앗아 간 후 우리 투자사와 공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충분히 할 수도 있는데, 우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걸 이 글을 통해서 말해주고 싶다.

도덕성은 모든 직업에서 요구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특히, 다양한 사업을 검토하면서 보안을 요구하는 정보를 여기저기서 듣고 볼 수 있는 VC에겐 생각보다 더 엄격하게 요구되는 직업정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생태계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대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짜 창업가

어원은 불어지만, 창업가를 뜻하는 공식 영어는 ‘entrepreneur’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반대말인 ‘fauxtrepreneur’라는 비공식 단어도 있다. ‘Faux’가 불어로 ‘가짜’라는 의미인데, 해석 그대로 가짜 창업가를 뜻한다.

가짜 창업가들의 시대가 다시 왔다. 요새 미국에서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면, 이 fauxtrepreneur라는 단어가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그만큼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가짜 창업가들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물론, 가짜 창업가들은 항상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존재할 것인데, 요샌 AI로 인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시작하고 제품을 만들면서 진짜 창업가와 가짜 창업가들이 시장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AI 기술과 제품으로 인해 이젠 누구나 모든 걸 만들 수 있다. 나 같이 코딩을 못 하는 사람도 바이브코딩 며칠만 하면 뚝딱하고 그럴싸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걸 보면, 누구나 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 그 어떤 제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이브코딩해서 만드는 제품은 시장에 진짜로 존재하는 문제를 깊게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은 없고,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껍데기 제품이다. 실제로 바이브코딩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제품이 그럴싸한 껍데기만 있는 깡통 제품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대충 만든 제품으로 투자받는 세상이 온 걸 보면 가끔은 나도 놀랄 때가 있다.

창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건 확실하다. 과거에는 창업하고 싶어도 개발을 못 하면 개발할 수 있는 코파운더를 찾거나 직접 배워야 했고, 이게 창업의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다 AI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서 나이, 경험, 학력과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만들고, 창업할 수 있다. 실은 이렇게 창업의 장벽이 낮아진 건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스트롱이 한국에 투자한 지 15년이 됐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야심차고, 자신감 있는 창업가들이 지금같이 많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투자할만한 창업가가 없는 문제는 없어진 지 오래됐고, 이젠 다 투자하고 싶은데 예산이 한정됐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좋기만 하진 않다. 실은, 부작용 투성이다. 넘쳐흐르는 창업가들과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 이들이 만든 제품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들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면 가짜 창업가가 상당히 많다. 제대로 된 사업을 만들고 싶어서 사업하는 창업가보단, 그냥 요새 AI 관련된 사업을 하면 투자받기 쉬운 환경이라서 창업하고 투자 좀 받은 후, 한 2~3년 후에 적당히 엑싯하거나 사업이 잘 안되더라도 이력서에 “AI native 회사를 창업해서 스트롱벤처스로부터 투자유치” 경력을 추가하면 구인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창업가들은 실은 항상 존재했는데, 바이브코딩 전에는 꽤 높은 정확도로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게 가능했다. 이젠 모두 다 너무 그럴싸한 제품 껍데기를 만들고, 모든 것을 다 AI에 물어보고 준비해서인지 이들을 구분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졌다.

요새 내가 제일 힘든 건, 진짜 사업을 하기 위해 창업하고, 이 고통스러운 여정을 최소 10년 이상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진짜 창업가와 그냥 AI라는 테마로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받고, 몇 년 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하는 가짜 창업가를 구별하는 것이다. 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또한 스스로 정화되고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AI라는 아주 화려한 재킷을 입고 다닌다. 문제는 모두 다 그 화려한 재킷이 얼마나 이쁘고 멋진지 칭찬하지만, 그 누구도 그 재킷 안에는 뭘 입었는데 안 물어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킷을 벗으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은 발가벗은 가짜 창업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린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새로운 고객획득비용 공식

바로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네이버나 구글 같은 전통적인 검색 엔진보다 ChatGPT나 클로드를 활용한 AI 검색을 통한 고객 유입이 대세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안 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네이버와 구글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AI 검색이 전통적인 검색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모든 스타트업이 마케팅의 판 자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이고,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고객 획득 방법과 고객획득비용(CAC)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전통적인 퍼포먼스 마케팅은 구글, 네이버, 유튜브, 메타 등에서 계속 해야 하는데, 동시에 AI 검색을 위한 최적화 작업도 해야 한다. 즉, CAC는 올라가면 더 올라가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진 이렇게 해서 고객을 획득하고 ROAS를 잘 관리하면 돈을 벌 가능성이 꽤 높았다. 고객을 아무리 비싸게 확보해도, 이들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면 나름 잘 작동하는 마케팅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비용 항목이 생기고 있는데 바로 토큰 비용이다. 고객을 우리 서비스로 데려오기 위해서 여전히 마케팅에 돈을 많이 써야 하는데,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이젠 토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

SEO, AEO, GEO를 잘해서 트래픽이 폭주하면, 그리고 제품을 잘 만들었다면, 우리 매출도 증가하지만, 동시에 고객 획득 비용과 토큰 비용 두 가지가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과거에도 트래픽이 폭주하면 인터넷망 비용이 발생했고, 서버 비용이 발생했다. 이후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면서 망과 서버 비용은 증가한 트래픽으로 버는 매출 대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고, 어쩌면 AI 토큰 비용도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서 모든 창업가는 고객 획득 비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객 획득 부분에서는 오가닉 마케팅 기법을 강화하고 AI 검색 엔진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콘텐츠 마케팅을 고도화해야 한다. 블로그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인 콘텐츠 마케팅이긴 한데, 이건 스케일 하려면 시간이 정말 많이 필요하고 대부분 그 전에 포기하거나 망한다. 고객을 획득한 후에는 이들이 우리 서비스를 미친 듯이 사용하게 만들어서 매출을 극대화하고, 매출이 증가할수록 늘어나는 토큰 사용을 최적화해야 한다. 아마도 GPU와 NPU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비싼 파운데이션 모델과 싼 모델을 같이 사용하면서 토큰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앞으로 창업가들이 이 재미있지만,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풀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어쨌든 이젠 고객 획득 비용에 대한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고객 모집과 토큰 사용 모두에 대해서.

AI 검색과 퍼널 관리

가트너와 같은 시장 조사 기관의 자료를 보면 앞으로 몇 년 후엔 사람들이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보단 AI를 통해 모든 것을 검색할 것이라고 한다. 이게 3년 후일지, 10년 후일진 나도 모르겠지만, 요즘 트렌드를 보면 그냥 시간의 문제일 뿐, 궁극적으론 챗GPT와 클로드와 같은 AI 서비스가 구글과 네이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글과 네이버도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있고, 본인들도 AI 검색엔진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검색과 광고 시장에서 돈을 너무 잘 벌던 회사라서 그런지 이 전환이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나는 검색할 때 여전히 구글과 네이버도 사용하지만, AI도 적절히 사용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AI를 더 많이 사용하고, 챗GPT와 클로드를 AI 생산성 툴 또는 바이브코딩 플랫폼으로 잘 활용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마도 시장의 절대다수인 일반인들의 머릿속에는 이 두 개의 제품이 ‘검색엔진’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AI 검색으로 제품을 발견한 고객은 실제로 그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즉, AI 검색으로 제품을 발견하는 고객의 구매전환율은 일반 검색을 통해 같은 제품을 발견하는 고객의 전환율보다 높다는 의미인데, 크겐 거의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나도 생각해 보니, 지난주에 AI로 검색한 제품이 5개였는데, 이 중 5개를 모두 구매했다. 네이버로 검색했으면 이 중 하나 정도 구매하거나 아니면 아예 구매하지 않았을 텐데 AI 검색의 전환율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더 생각해 보고, 더 읽어보니 – AI 검색 포함 – 고객의 여정이 시작되는 구매 퍼널의 위치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러닝용 티셔츠를 구매하고 싶은데 네이버로 검색하면, “러닝용 티셔츠. 가볍고 통풍성 좋아야 함. 가격은 10만 원대” 뭐, 이런 키워드를 입력할 것이고,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 회사 링크, 그리고 블로그가 검색 결과로 나열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중 하나를 클릭해서 들어갈 것이고, 쇼핑몰 사이트면 판매하는 제품을 보고 바로 나갈 수도 있고, 특정 제품 상세 페이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제품 상세 페이지로 들어가서 상품 설명을 보고 내가 찾던 제품이면 구매할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 내가 원하던 딱 그 상품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네이버로 검색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전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AI 검색을 하면, “요새 핫한 러닝용 티셔츠 추천해 주세요.”(맞다, 나는 AI한테 항상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한다)로 시작하면 AI가 계속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기능성인가요? 패션인가요?” 등. 그리고 AI와 대화할수록 더욱더 정교한 질문을 하고, 이전 대화로부터 내 성향과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를 활용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할 만한 소수의 제품을 추천해 준다.

그러면 나는 이 링크를 클릭해서 그 제품의 상세 페이지로 바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AI에 많은 걸 물어봤고,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 줬기 때문에,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제품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러면 이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구매 전환율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

즉, 네이버로 검색하면 구매 퍼널의 맨 꼭대기에서 고객의 여정이 시작할 확률이 높지만, AI로 검색하면 구매 퍼널의 중간 또는 하단에서 고객의 여정이 시작될 확률이 높아서 전환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의미다.

또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AI는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마켓플레이스보다 자사몰로 더 많은 트래픽을 보내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환율만 높아지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또한 높아져서 이커머스 업체들에겐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쨌든 구매 퍼널의 후반부에 있는 고객들을 자사몰로 보낸다는 건 이커머스 업체들에겐 엄청난 축복이다.

하지만 아직은 AI가 누구에게, 어떤 고객을, 어떤 방식으로 보낼지, 또는 보내고 있는진 아직은 미지수이다. 여기서 아마도 AI 회사들이 광고비를 더 많이 내는 사이트로 트래픽을 더 많이 보내면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AI가 일반 검색을 대체하게 되면 구매 전환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고, 이럴수록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경쟁은 심화할 것이다. 정말로 잘하는 서비스와 제품들의 전환율이 그렇지 못한 회사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회사들은 아예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본다. 결국 AI 검색이든 AI 검색이 아니든,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항상 이긴다는 건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