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에 3~4번 정도 미국의 다양한 도시로 출장을 가는 데, 오래 가면 4주 동안 미국 전역을 이동한다. 한 달 동안 한 도시에서 하루 내지 이틀 숙박하고, 계속 비행하면서 한 호텔 체크아웃에서 다른 호텔 체크인으로 전전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약간 피폐해진다.
그래서 장기 출장을 가면 체력 안배와 컨디션 조절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매일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시차가 있지만 최대한 잠을 잘 자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되도록 하루 미팅 개수를 너무 많이 만들지 않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피곤한데 술까지 먹으면 더 피곤해지고, 이 피로가 오랫동안 쌓이면 힘들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저녁 약속을 잘 안 잡지만, 출장 중에는 더욱더 되도록 술을 안 먹고 저녁 약속보단 아침 또는 점심 약속을 잡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녁에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호텔방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책을 많이 읽는다. 매일 최소 30분 이상 독서를 하고 – 그래서 오히려 출장 가면 책을 더 많이 읽는다 – TV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를 본다. 요새 내가 미국에서 보는 프로가 두 개 있다. 17년째 장수하고 있는 Shark Tank는 그냥 TV를 켜놓고, 재방송까지 전부 다 볼 정도로 즐기는 쇼이고, 또 즐겨 보는 프로가 History Channel에서 7년 동안 방영하고 있는 The Food That Built America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음식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이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성장해서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이 됐는지를 드라마와 같이 구현하는데,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맥도날드, 코카콜라,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등과 같은 제품이 등장한다. 이번 출장에서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냉동 스낵 Hot Pocket에 대한 에피소드를 매우 흥미롭게 봤다.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지만, 내가 인상 깊게 봤던 건, 1950년대 중반에 전자레인지가 발명됐지만, 이걸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판매가 부진했고, 1980년대에 핫포켓이라는 냉동 스낵이 등장하면서 이 스낵이 전자레인지의 판매를 견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보니, 미국 시장의 전자레인지 침투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수치를 찾을 수 있었다:
-1971년: 미국 가정의 1% 미만
-1983년: 핫포켓 출시
-1986년: 25%
-1990년: 72%
-1997년: 90% 이상(즉, 미국 모든 가정에서 전자레인지 사용)
이 수치를 보면, 핫포켓 때문에 전자레인지가 발명된 건 아니지만, 전자레인지로 뭘 할지 모르고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전자레인지를 필수품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냉동식품이 바로 핫포켓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핫포켓이 나오면서, 누구나 다 이 냉동 스낵을 먹기 위해서 전자레인지를 서둘러 구매했다고 이야기하는 걸 이 프로에서 직접 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미국의 가정이 전자레인지를 구매할수록, 핫포켓의 매출 또한 급성장했다.
핫포켓과 전자레인지의 관계가 나에게 흥미로웠던 건, 내가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가 출시되자마자 잘 팔렸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시기에 냉장고가 발명됐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를 차갑게 먹기 위해서 더 많은 미국인이 냉장고를 샀고, 냉장고 때문에 코카콜라를 차갑게 판매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코카콜라가 판매됐다.
코카콜라나 핫포켓과 같은 제품이 단순히 잘 팔리는 제품에 멈추지 않고,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되고,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시기에 냉장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코카콜라가 되진 않았을 것이고, 전자레인지가 없었다면 핫포켓이 미국 냉동 간식의 대명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종사하는 테크 생태계에도 이런 큰 흐름을 타고 거대한 기업들이 만들어졌다. 테크 분야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회가 약 10년마다 한 번씩 오는데, 수십조 원 기업가치의 회사들은 이런 10년마다 오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탔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60년대에 반도체가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인텔이 이 시점에 창업됐다. 이후, 반도체는 더 발전했는데, 솔직히 이 고성능 반도체에 최적화된 시장을 아직 찾지 못하던 시기에 PC의 시대가 왔다. 이때가 1970년대였고, PC와 반도체 회사 모두 물 만난 고기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오라클과 같은 회사가 70년대에 탄생했고, 이들이 만드는 컴퓨터는 반도체의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기계였다. 그리고 이 기계의 성능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반도체 산업도 같이 성장했다.
그 결과로,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이 탄생하기 전에는 모든 컴퓨터가 따로 놀았다. 1980년대에 미국방연구소(DARPA)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땐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이 시점에 시스코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인터넷 네트워크를 위한 척추가 되는 스위처와 라우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스위처와 라우터 시장도 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치 핫포켓과 전자레인지가 함께 성장한 것처럼. 그리고 90년대부터 메인스트림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초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이 시기에 창업됐다.
이후 소셜, 모바일, 그리고 이젠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데, 이 시기에 거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들은 어떤 흐름을 탈지 잘 고민해 봐야 한다. 내가 이 파도 위에서 사업하면서 파도를 더 거대하게 만들고, 다시 이 파도를 타고 더 높게 오를 수 있는, 이런 플레이북을 만들어야지만 시대의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다.
핫포켓과 전자레인지. 코카콜라와 냉장고. 이런 시대의 흐름을 다시 이 AI의 시대에서 재현할 수 있는 창업가들이라면 꼭 스트롱에 연락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