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11년째 국내 최고의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에 프라이머 28기 데모데이가 잘 끝났는데, 그다음 날 창업가분들을 대상으로 투자 관련 AMA 세션을 진행했다. 몇 년 전부터 데모데이 다음날 항상 진행하는 세션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첫 번째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 창업가의 입장에서 – 프라이머 투자는 이미 받았지만, 프라이머 배치에 선발되고 투자받는 것과 실제로 많은 VC에게 피칭하고 펀드레이징을 하는 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 막막하고, 궁금한 점도 많아서 이분들이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서 나도 아주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변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자리다.
이날도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나도 다양한 조언을 드렸는데, 투자 유치 관련해서 내가 가장 강조했던 내용은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가장 많은 투자자를 만나는 전략, 하지만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수록 결국 거절당할 확률과 횟수가 압도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피칭 횟수가 증가할수록 거절의 횟수에는 가속도가 붙고, 거절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창업가의 자존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일단 거절을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절대로.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나에게 투자 못 하겠다고 하는 투자자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뭐, 내가 정말 이상한 짓을 했다면 개인적인 감정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창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VC라는 직업이 Yes라고 하는 것보다 No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므로 그냥 우리에게 No라고 하는 건 실제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VC가 나에게 No라고 할 때마다 기분 언짢아하고 자존감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는다면, 사업을 할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사업을 할 계획이라면, 투자자에게 거절당하는 건 앞으로 내가 경험할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VC에게 거절당하는 걸 못 참고 못 견뎌 한다면 창업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자, 그럼 투자자에게 거절당한 창업가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일단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건 그 투자자에게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을 갖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사업이 부족한 것이고, 투자자가 봤을 때 우리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니, 괜히 확대해석하지 말자. 그냥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 사업을 더 잘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나면 된다. 즉, 우리와 궁합이 맞는 투자자를 만나야 하는데, 이런 투자자를 찾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투자받는 과정과 피칭 과정은 절대로 scalable 하지 않다. 이건 AI로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냥 창업가가 발품 팔면서 한 명씩 직접 만나야 한다.
거절당한 창업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이 몇가지 있다.
첫째. 이번에는 투자하지 못하겠다는 거절의 의사를 받으면, 얼굴을 붉히지마라. 위에서 말한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No이지만, 어쨌든 거절의사를 확실히 밝혀줘서 우리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라.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시간 내주고 대화해줘서 고맙다고 해라. 전화로 해도 되고, 이메일로 해도 되고, 문자로 해도 된다. 참고로 나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이런 행동이 같은 인간으로서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이 투자자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지는 게 좋다. 우리도 거절을 훨씬 더 많이 하는데 – 참고로 올해 우리는 거의 1,800개 이상의 회사를 검토했다 – 이렇게 했을 때 창업가가 감정적으로 나오거나 아예 대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나도 이 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고 다시 연락오면 아예 안 만날 확률이 높다.
둘째.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해라. 여러 번 만났던 투자자가 투자하지 않겠다고 하면, 분명히 거기에는 (나름)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를 거절한 건 상관없지만,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투자자한테 건설적인 피드백을 요청하는 게 좋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확장성이 문제라면, 다른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우려를 할 것이다. 또는 내가 대표이사로서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투자자한테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내가 부족했던 점들과 사업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라. 다음 투자자 미팅 전에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Yes의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냉혹하다. 냉혹하다기보단 내가 봤을 때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1/ 일단 명확한 거절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니고, 그냥 오랫동안 밍기적거리거나 아예 연락이 안 되면서 잠수 타는 VC들도 너무 많다. 솔직히 왜 그러는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사람들이 VC에 대한 전반적인 평판과 이미지를 엄청나게 깎아 먹어서 좀 짜증나긴 한다.
2/ 거절의 의사를 전달한 투자자들 대부분 명확한 피드백을 안 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 , “우리의 투자 전략과 맞지 않다”와 같은 그 어떤 사업이나 창업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별로 도움 안 되는 피드백을 준다. 이게 피드백인지 개소리인진 잘 모르겠지만.
셋째.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봐라. 세상에 VC는 많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창업가의 네트워크로 이런 투자자들을 다 만나는 건 힘들다. 어떤 투자자가 거절했다면 이 분이 아는 다른 투자자 소개를 부탁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봐라. 왜냐하면 창업가보단 VC가 다른 VC를 훨씬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 번에 한 명씩 다른 투자자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은 많이 다르다. 대부분 VC가 다른 투자자 소개를 해주진 않을 것이다. 실은, 이건 우리한테도 좀 애매한 부탁이긴 하다. 내가 투자하지 않는 창업가를 내가 아는 다른 투자자에게 소개해주면. “스트롱은 투자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에게 소개해주나요?”라고 반박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가가 정말 좋은데 특정 VC가 투자하기에 너무 초기거나,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충분히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소개받기 위해서는 창업가가 이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했고, 그렇게 하려면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넷째. 나를 거절한 투자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어봐라. 이번에 투자 안 했다고 평생 우리에게 투자 안 하는 건 아니다. 당시 그 VC의 상황, 펀드의 상황, 시장 분위기, 회사의 파트너나 대표이사의 기분 때문에 우리에게 투자 안 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과 분위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심지어 심사역은 우리를 무척 좋아했지만, 회사에서 승인을 못 받아서 투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심사역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우리를 다시 검토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투자가 성사된 경우를 나는 꽤 많이 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창업가가 투자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우리를 거절했지만, 분기 또는 반기마다 연락해서 간략하게 회사 업데이트를 해주면 “이 분은 우리가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연락을 주시고 회사 상황을 업데이트해 주시는데, 우리가 투자하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소통하실까?”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우리를 좋게 볼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안 된다면?
낙심하지 말고, 자존감 낮아지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 마라. 원래 투자는 어렵고, 대부분 스타트업은 투자유치에 성공하지 못한다. 어차피 오랫동안 사업할 의지가 있다면 투자를 받든 안 받든, 그냥 자기 사업 열심히 하면 된다. 투자받으려고 사업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