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젊은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다양한 걱정과 여러 가지 불안감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직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꽤 많은 분들이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워라밸을 손꼽는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워라밸을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도 균형 있는 삶을 좋아한다. 일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므로,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은 꼭 필요하고, 일도 적당히 하고, 삶도 적당히 즐기든지, 일도 열심히 하고, 삶도 열심히 즐기든지, 어떻게든 이 두 가지를 잘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 특히 스타트업의 현실은 – 이렇게 하는 게 정말 힘든 것 같다. 미안한 말이지만,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을 창업했거나, 아니면 스타트업에서 현재 일하고 있다면, 이건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경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이 분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물이 고인 절대 강자가 존재하면, 이 공룡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 놓은 만리장성을 단시간 내에 파괴해야 한다. 절대 강자가 없는 분야라면, 더 안 좋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고 뭔가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라면 순식간에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다. 어쨌든, 우린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의 내려간 부분에서 시작하는 거라서, 빨리 체력과 근력을 키워서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거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빠르고 힘차게 올라가서 이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남들이 일할 때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남들이 쉴 때도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이 짓을 길게는 10년 넘게 해야 한다.

일을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우린 자주 한다. 이건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당연히 모든 종류의 회사와 업무에 적용되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약간 특수하다. 스타트업은 일을 잘 하는게 중요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일에 투입하는 절대적인 시간 또한 중요하다. 즉, 진짜 열심히 일해야 하고, 진짜 일을 잘 해야 한다.

내가 쓴 글이지만, 이렇게 보면 워라밸이 불가능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참 불공평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잘 엑싯하고, 남들이 평생 일해도 못 만져보는 돈을 10년 일해서 벌면, 아마도 주위에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불평을 또 할 것이다.

워라밸이 없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우리 같은 VC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완벽하게 찾는 건 쉽지 않다. VC는 워라밸이 없는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람을 지원하는 업무는 9시에 시작해서 6시에 끝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일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선 우리도 항상 대기 전원 상태여야 한다. 포트폴리오 대표가 금요일 밤 11시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당장 도와줘야 하고, 주말에 이들을 지원해야 하면, 주말에도 당연히 일해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VC라는 직업에 따라다니는 책임이자 의무이다.

워라밸이 불가능한 이런 스타트업 라이프가 싫으면, 스타트업에서 일을 안 하면 된다. 간단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고 싶은데, 남들과 똑같은 페이스로 달릴 순 없지 않을까?